원조 '강남스타일' 압구정 로데오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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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패션의 거리’로 명성을 날렸던 압구정 로데오거리엔 요즘 빈 상가가 적지 않다. 대부분 권리금도 붙지 않았다. [황정일 기자]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압구정 로데오거리(이하 압구정상권). 평일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붐비는 인근 가로수길(강남구 신사동)이나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달리 한산하기까지 했다.

 군데군데 빈 상가도 눈에 띈다. 부동산중개업소 매물판에는 임대차 물건이 가득했다. 이곳은 1990년대 ‘패션의 거리’로 급부상한 이후 최근까지도 서울의 주요 상권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이날 찾은 압구정상권은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과거 패션의 거리 명성을 찾기 힘들었다.

 원조 ‘강남스타일’ 압구정상권이 고전하고 있다. 주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압구정상권엔 1년 넘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상가가 적지 않다. 상권 내 이면도로는 물론 메인도로에도 빈 상가가 적지 않다. 임대차 물건 대부분은 특히 권리금이 없는 이른바 ‘무권리’ 상가다.

 수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1억~2억원을 호가하던 물건들이다. 권리금은 상가 임대차 때 상인끼리 주고받는 돈으로 장사가 잘되는 상가(자리)일수록 비싸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권리금만으로 상권을 판단할 수 없지만 무권리 상가가 많다는 건 그만큼 장사를 해도 수익이 안 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압구정상권의 A공인 관계자는 “2012년 분당선 연장선 압구정 로데오역이 개통됐지만 여전히 임차인을 못 구한 상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압구정상권의 고전은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닥친 탓이다. 무엇보다 할인매장·인터넷 쇼핑몰 등이 발달하면서 패션산업이 침체기를 맞았다. 압구정상권을 찾던 소비자들이 인터넷 등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옷가게가 떠나는 자리는 술집이나 밥집이 채우면서 패션의 거리라는 특색도 잃어 갔다.

 여기에 가로수길·세로수길 등 인근 상권이 급성장하면서 수요가 분산되기 시작했다. 교통여건도 악재로 작용했다. 강북 수요층의 압구정상권 진입로 역할을 한 성수대교 붕괴로 1990년대 후반 상권 접근성이 악화됐고, 이후엔 분당선 연장선 공사로 만성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그나마 최근 상인과 구청이 상권 살리기에 적극 나서면서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상인과 구청은 지난해부터 ‘패션 마켓’ 행사 등을 열며 패션의 거리 복원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 덕에 지난해엔 스포츠브랜드인 리복이 아시아 최초로 압구정상권에 리복클래식 매장을 열기도 했다. 강남구청 지역경제과 김혜선 주무관은 “지하철이 개통됐지만 압구정상권은 여전히 위축된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22일 열린 패션 마켓 행사에 40여 개 패션업체가 참여하는 등 희망도 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상가 몸값과 임대료에 거품이 끼어 있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용면적 66㎡ 정도 상가 임대료는 평균 보증금 1억원에 월 500만원 선으로 호황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압구정상권 임대료는 올 1분기 ㎡당 4만800원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20.3%나 뛰었다.

 부근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압구정이라는 상징성과 지하철역 개통으로 몸값이나 임대료가 여전히 강세”라며 “무권리 점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한PB 이남수 PB팀장은 “압구정상권은 고급 상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 사진=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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