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심장이 뛴다, 이 사내의 굿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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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 2위에 오른 에릭 컴프턴이 16일(현지시간) 파인허스트 골프장에서 갤러리 박수에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로이터=뉴스1]

“엄마, 저는 이제 끝인 것 같아요. ”

 2007년 가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프로 골퍼 에릭 컴프턴은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켰다. 피를 토했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그는 스물여덟 인생의 끝이라고 느꼈다. 그의 심장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심장에 이상이 있어 12살 때 한 소녀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거부 반응이 자주 일어났다. 그의 삶은 고통이었고, 그나마 두 번째 심장도 수명이 다 된 것 같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 엘리에게 마지막 전화를 했다.

 7년이 지난 후인 16일(한국시간) 컴프턴은 US오픈이 열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골프장의 마지막 홀 그린에서 갤러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최종합계 1언더파 2위에 오른 그의 얼굴에 찬란한 태양이 비쳤다. 7년 전 컴프턴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통화 중 어머니의 간청으로 응급실에 가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마침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구선수 출신 남성의 심장을 이식할 수 있었다.

 컴프턴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심장 때문에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지 않아도 되는 골프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이고 싶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이식 후유증 때문에 신경 계통에 이상이 있다. 여러 가지 알레르기 증세도 나타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 세 번째 심장을 가진 컴프턴이 PGA 투어 선수가 된 것만으로도 인간 승리의 뉴스였다.

 US오픈은 컴프턴의 100번째 PGA 투어 대회다. 그는 아직 우승을 못해봤고 10위 안에 든 것은 단 세 번뿐이었다. 세계랭킹은 187위에 불과한 평범한 선수였다. 메이저 대회 참가는 딱 두 번째였다. 이 대회도 지역 예선을 거쳐 나올 수 있었다. US오픈은 매우 어렵다. 페어웨이는 좁고 그린은 시멘트처럼 단단하다. 선수들은 실수를 할까봐 벌벌 떨면서 샷을 한다. 컴프턴은 대회 중 현기증 등 여러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언더파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컴프턴은 “나는 이제까지 많은 것을 겪었다. 이곳에서 티샷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을 겪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샷이 최고가 아닐지 모르지만 코스가 어려워 선수들 정신력을 테스트하는 US오픈에는 강점이 있다. 나는 포기를 모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우승은 독일의 마르틴 카이머가 차지했다. 카이머는 “선수들 창피 주려고 만든 대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어려운 US오픈에서 무려 9언더파를 치면서 우승했다. 그래서 일부 언론에서는 ‘마르틴 카이머와 155명의 난쟁이들’이란 표현도 썼다. 랭킹 1위 아담 스콧, 필 미켈슨, 로리 매킬로이 등이 포함된 155명의 난쟁이 중 컴프턴이 성적이 가장 좋았고 가장 빛났다.

 컴프턴은 “US오픈에서 우승한다면 골프를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용기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골프는, 아니 스포츠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커다란 업적을 성취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컴프턴의 어머니 엘리는 “아들은 챔피언의 심장을 가졌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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