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 가는 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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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것은 천당에 이르는 나의 30살째 해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딜런·토머스의」유명한 시가 있다. 「토머스」는 이 시를 30번째 생일을 맞는 l0월에 썼다. 「토머스」는 유년 시대를 봄과 여름으로 비유했다. 그리고 30세를 인생의 큰 전환기로 보고, 가을을 연상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가을이 일찍 온다. 「런던」은 9월만 되면 평균 기온이 14도로 떨어진다. 같은 시기에 「로마」는 21도나 된다.
그만큼 영국의 가을은 길다. 영국에서 가을을 HARVEST(수확의 가을)와 FALL(조락의 가을)로 나눌 만도 하다.
아무리 둘로 갈라 봐도 가을은 가을이다. 아무리 햇살이 화사하고 사과의 붉은 색이 아름다워도 소용이 없다.
10월은 역시 가을의 「멜랑콜리」를 느끼게 한다. 「토머스」처럼 영원히 행복한 어린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게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보는 눈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극작가 「트리스탕·베루날」은 유대인이었다. 제2차 대전 중에 「파리」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자 그도 결국 잡히고 말았다. 이 때 그는 『지금까지는 매일 공포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희망을 가지고 샅아 갈 수가 있다』고 말했었다.
고대 「켈트」 민족은 10월 31일이 1년의 마지막날이라 여겼다. 이날 밤에는 사자들이 이승에 되돌아오고 악마들이 아이들이며 가축을 해친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켈트」인들은 그렇게 무서운 밤을 되도록 즐겁게 지내려 했다. 어린이들이 가면을 쓰고 거리를 누비는 「할로인」이란 잔치도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이제는 10월. 이제 모든 것이 완연한 가을로 풍경이 바뀌어지는 것이다. 멀지않아 단풍이 지고, 멀지않아 포도에는 낙엽이 쌓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러워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나는 가을을 낭독한다. 인간의 계절이기에.
내키지 않은 태양이 더는 대지에 간섭치 않으며 억지로 잔디를 살리고 얼어붙은 땅에 생기를 부어넣지도 않으니!』
「아치발드·마크라이슈」는 이렇게 낙엽 지고 바람이 음산한 소리를 내는 가을을 찬미했다.
모든 것은 보기 나름이다. 아무리 가을 하늘이 맑아도, 아무리 사과며 배가 싱그러워도 젊은 「토머스」처럼 서글퍼질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마크라이슈」처럼 60이 넘어도 가을을 즐길 수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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