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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인사,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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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대선 직전이었던 2012년 11월 본지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인터뷰가 있었다. 당시 언론의 포커스는 박 후보가 그 무렵 내걸었던 ‘대탕평 인사’ 공약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본지는 “박 후보는 대구·경북(TK) 출신인데 집권하면 오히려 TK 출신들이 인사에서 조금 손해 볼 수도 있는 거냐”고 물었다. 박 후보가 “그럴 각오”라고 했으면 곧바로 1면 톱 제목이 됐을 거다. 그런데 박 후보의 답변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박 후보는 “대통령 동향이라고 해서 특별히 우대를 받는 것도, 특별히 손해를 보는 것도 옳지 않다. 능력과 인품만 보고 국민을 위해 가장 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르겠다. 그게 제 인사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탕평인사라고 하면 대통령이 영남이면 총리는 호남에서 발탁하는 것과 같은 인위적 지역 배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 후보의 답변은 그 같은 인위적 배분은 하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출신 지역을 안 따지고 능력대로만 인선(人選)하면 저절로 탕평인사가 된다는 구상이다. 이론상 틀린 부분은 없다. 확률적으로 인재야 지역마다 골고루 있을 테니 ‘능력’만 보고 발탁하면 출신 분포는 저절로 지역별 인구 비율을 따라가게 될 것 아닌가.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구상은 논리적으로 옳을지 몰라도 현실에선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능력’이나 ‘인품’이란 기준이 워낙 애매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후한 평가를 매기는 건 인지상정이다. 총리·장관·청와대수석 같은 정무직 인선은 후보군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불특정 다수에서 적임자를 골라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자신이 평소에 좋게 봤던 사람이나 자신과 가까운 그룹의 추천을 중시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향우회·고교 동문회와 같은 지역 기반 네트워크가 워낙 촘촘하다. 인간관계 자체가 지역 기반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특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줄을 잡기 위해 지역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러다 보면 인사권자가 평소 아는 사람이나 주변의 추천을 통해 사심 없이 발탁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론 지역 편중이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 정권마다 특정 지역의 인사 편중 논란이 되풀이되는 건 다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도 부산·경남(PK) 인사가 국가 요직을 다 꿰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선 PK 인사의 발원지로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경남 거제 출신) 비서실장을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김 실장이 그런 정도의 책임이 있는 건지, 단순한 정치 공세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탕평인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구상이 후보 시절과 달라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진 것 같다. 총리 인선을 비롯해 대규모 인사를 앞둔 박 대통령은 지역 문제의 정치적 민감성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능력’만 본다고 저절로 탕평인사가 되지 않는다. 때론 철저한 인위적 지역 안배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