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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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나를 음탕한 여자로 보는군요. 도련님의 체격이 하도 멋있어서 조금 만져본 것을 가지고. 도자기나 항아리도 너무 멋있게 보이면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싶잖아요."

금련은 엎어진 주전자를 집으며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송은 의자를 박차고 나가려다가 금련의 눈물을 보고는 멈칫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이대로 나가버리면 형수의 얼굴을 다시 보기가 힘들 것 같아 무송은 도로 의자에 앉았다.

금련도 주전자를 탁자에 놓고 의자에 앉더니 이번에는 아예 탁자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송은 자기가 지나치게 무안을 주었나 싶어 안절부절 못하였다.

"저는 형수님을 음탕한 여자로 본 것이 아니라, 형수님의 손길에 흥분이 되는 나 자신이 싫어서 고함을 지른 거예요."

"내 손길에 흥분이 되다니요?"

금련이 눈물 젖은 두 눈을 천천히 들어 무송을 건너다보았다. 눈물 흘리는 모습도 어찌 저리 매혹적일까. 무송은 아랫배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형수님은 어떤 생각으로 저를 만졌는지 모르지만 나는 피가 끓는 장정이잖아요. 아무리 형수님이라고는 하지만 여자의 손이, 그것도 아리따운 섬섬옥수가 몸을 만지는데 흥분이 안 된다면 남자가 아니지요."

"그래요. 나도 형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예요. 도련님 같이 잘 생긴 남자를 보면 자연히 마음이 끌리는 여자란 말이에요. 그렇지만 형수와 시동생이라는 인륜을 지키기 위해 오늘까지 마음을 달래며 참아왔어요."

"끝까지 참으셔야지요. 저도 사실은 형수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참 매력적인 여자구나 하고 감탄을 하였어요. 형님이 은근히 부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인륜이라는 게 있잖아요."

무송은 자기도 모르게 술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술잔에 술이 없자 주전자를 기울여 따르려고 하였다.

"내가 따를게요. 주전자가 엎어지는 바람에 술이 조금밖에 없을 거예요."

금련이 주전자 손잡이를 잡는 바람에 둘의 손이 겹치게 되었다. 무송은 손을 얼른 빼려다가 아까 무안을 준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에는 그대로 있었다. 금련은 손이 겹쳐진 대로 가만히 있어주는 무송이 감사하여 더욱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수님, 이제 그만 우세요. 형수님이 자꾸 우시면 내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그렇게 내가 매력적인 여자로 보였어요? 나를 안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무송이 조금 부드럽게 나오자 금련이 다시금 여유를 찾은 듯 미소를 짓기까지 하였다.

"형수님을 안고 싶다니요? 감히 그런 생각까지는 못하고…."

무송이 말끝을 얼버무리며 술잔의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매력적인 여자구나 하는 것은 곧 안고 싶다는 뜻이래요, 후후. 아무튼 도련님이 나를 매력적인 여자라고 생각했다니 기분은 좋군요. 나한테도 술을 따라줘요."

금련이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무송 앞으로 술잔을 내밀자 무송이 주전자를 기울여 술을 따라주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흰 눈이 난분분히 내리고 있었다.

금련은 오늘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까 술을 가지러 나갈 때 앞문과 뒷문을 걸어잠가 두기까지 하였는데, 과연 무송의 품에 안길 수 있을지 아직은 속단을 할 수가 없었다.

금련이 무송이 따라주는 술을 반쯤 마시고, 나머지 술이 담긴 술잔을 무송 앞으로 슬그머니 밀어놓으며 말했다.

"여자가 남긴 술을 남자가 받아 마시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지요?"

무송은 술잔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얼굴이 벌개지기만 했다. 무송이 드디어 술잔을 들었다. 금련은 가슴이 타는 듯하였다. 무송은 손에 든 술잔을 천천히 기울이더니 술을 방바닥에 붓고 말았다. 으윽, 금련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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