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60만 개, 어린이집 1000개 … 실현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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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기초연금 같은 거대 복지도 중요하지만 국민에게는 아동안전 등 생활 속 복지가 더 와닿는다. 올해 복지예산은 중앙정부 106조원, 지방정부 40조원(중앙정부의 국고지원금 포함)이다. 중앙의 복지사업은 360개지만 지방정부는 1만2220개(광역지자체 400개)다. 복지는 지방정부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4 지방선거 후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본지는 한국사회복지학회 소속 교수 13명과 함께 여론조사 1, 2위를 달리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34명의 복지공약을 평가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방지대책 22명이 내놔

 본지는 아동학대와 세 모녀 사건 예방, 노인 치매, 보육, 일자리 등 핵심 5대 공약을 평가했다. 아동학대 예방대책을 내놓은 후보는 김부겸(새정치 연합) 대구시장 후보, 김기현(새누리당) 울산시장 후보 등 2명뿐이다. 김부겸 후보는 학대 아동 긴급구제와 상담 등을 담당할 느티나무센터를 만들겠다고 공약했고, 김기현 후보는 육아종합지원센터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연계 강화를 내세웠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아동학대 사건이 일부에 해당하는 일이라 득표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역 사정에 맞는 복지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22명의 후보가 관련 공약을 냈다. 학회 평가단은 “박원순 후보는 사회복지사를 2000명에서 4000명으로, 방문간호사 400명을 800명으로 늘리겠다고 했으나 공무원 수 조정은 안전행정부 소관이라 단체장 차원을 넘는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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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은 공약이 일자리 창출이다. 상당수 후보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서울 정몽준(새누리당) 후보는 60만 개(연 15만 개)를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의 신규 일자리는 6만여 개에 불과했다. 경기 김진표(새정치연합) 후보와 인천 송영길(새정치연합) 후보, 광주 강운태(무소속) 후보, 부산 서병수(새누리당) 후보는 지난해 신규 일자리의 약 3배를 제시했다. 전남 이중효(새누리당) 후보는 13배를 목표치로 내놨다. 심상완(한국산업노동학회 학회장)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자리 숫자 목표는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고용률과 취업자 숫자를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광주 강운태 후보, 대구 김부겸 후보가 고용률 목표치를 제시했다.

 후보들은 젊은 엄마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상이 현실을 따라갈지는 의문이다. 서울 박원순 후보는 2년8개월 동안 국공립 어린이집 250개를 신설했는데, 이번에는 4년 동안 1000개 확충을 공약했다. 과거 재임 기간에 비춰보면 실현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약 재원 조달은 대부분 국비·민자

강원 최흥집(새누리당) 후보는 임기 동안 100개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인천 송영길 후보는 112개를 개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정부의 2014년 전국 국공립 어린이집 신규 개설 목표가 150개인 점에 비춰보면 공약 달성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공약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재원이 중요하다. 그런데 재원조달 방안 중 가장 많은 게 국비 지원과 민간 투자여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서울 정몽준 후보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53조원을 국비 지원 없이 약 46조원은 민간 투자로, 7조원은 서울시 예산으로 조달한다고 밝혔다. 충남 정진석(새누리당) 후보는 천안·아산권역과 내포신도시를 결합한 거대한 디스플레이 산업지대 구축과 충남의 실리콘밸리(CN밸리) 조성을 통한 착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하지만 투자유치 규모와 방법에 대해선 자세한 내용을 내놓지 않았다. 경기 김진표 후보는 총 소요재원(3조3000억원) 중 2조2000억원을, 경남 홍준표(새누리당) 후보는 전체 재원(35조원) 중 26조원을 국비로 조달하겠다고 공약했다. 충남 정진석·경북 오중기(새정치연합)·세종 유한식(새누리당) 등 10명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공약가계부를 제출하지 않았다.

효 상품권, 무료 해외유학 … 선심성 공약도

 선심성 공약도 눈에 띈다. 강원 최문순(새정치연합) 후보는 65세 노인에게 병원·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연간 8만원의 건강 바우처를 발급하겠다고 했다. 경남 김경수(새정치연합) 후보는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설·추석에 5만원씩 효 상품권을, 경기 남경필(새누리당) 후보는 노인들에게 월 2만원씩 ‘문화즐김카드’ 제공을 내걸었다.

무상 공약도 등장했다. 제주 신구범(새정치연합) 후보는 제주도를 교육특구로 지정해 대학입시 없이 대학 진학을 보장하고, 도내 고교 출신 졸업자는 무상으로 해외 유학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약속했다. 세종 이춘희(새정치연합) 후보는 6세 이하 아동에 대해 의료비 100% 지원(본인부담금 7억원 시에서 부담)을 약속했다. 이 정책은 노무현 정부 때 복지부가 시행했다가 의료 이용이 급증하는 바람에 약 1년 만에 폐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실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전남 이중효 후보의 군내버스 노인 무료 이용, 노령자 이동수단(이동보조기구) 무상 공급 공약과 인천 송영길 후보의 12세 이하 아동 36만 명에게 결핵·독감 등 8종 백신 무상접종도 공짜 공약에 들었다.

 본지와 사회복지학회는 후보별 복지 공약의 튼실한 정도를 세 단계로 나눠 평가했다. 서울의 정몽준·박원순 후보를 비롯한 16명이 보통 이상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사회복지학회 김영종 회장은 “서울·부산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후보들이 생활지원·보육·돌봄 등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공약이 아직도 미흡하다”며 “후보들이 복지가 아직도 광역단체장의 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현영·장주영·김혜미·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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