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닫힌 병실, 철문 막힌 통로 … 순식간에 유독가스 꽉 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소방차는 빨리 왔지만 구급차는 화재 신고 후 20분이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병실은 창문이 닫혀 독성을 띤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대부분은 불이 났는데도 의사와 간호사·간호조무사로부터 대피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런 일들이 겹쳐 희생을 키웠다. 28일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이하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가 그랬다.

 효사랑 요양병원엔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주로 입원했다. 이날 0시26분 이곳 별관 2층 병실에서 TV를 보던 김소진(68)씨는 매캐한 냄새를 맡았다. 이내 시커먼 연기가 번졌다. 김씨는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벽을 더듬어 빠져나왔다” 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0시27분 병원 직원의 신고를 받고 4분 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은 2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다. 0시55분엔 불이 완전히 꺼졌다. 별관 2층 한쪽 끝의 다용도실(3006호) 한 칸만 탔다. 그런데도 2층에 있던 35명 중 21명이 숨졌다. 1명은 근무 중이었던 간호조무사였고 20명이 환자였다. 대부분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용도실에 있던 매트리스 등이 타면서 나온 유독성 가스 때문이었다. 병실 문은 전부 열어놓은 상태여서 잠이 들었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대부분 연기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 스스로 빠져나온 이는 6명뿐이었다.

 불이 난 3006호는 2층 한쪽 끝이어서 바로 옆 복도 창문이 닫혀 있어 연기는 밖으로 빠지지 않았다. 2층 위 옥상으로 나가는 통로나 본관과 연결된 통로가 개방돼 있었더라도 연기가 빨리 빠져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통로엔 철문 등이 닫혀 있었다. 치매 환자가 밖으로 나가 사고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전남소방본부에 따르면 불이 났을 당시 병원엔 의사 1명과 간호사·간호조무사 10명이 있었다. 의사가 2명 이상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났다. 모두 11명이어서 ‘2명이 불을 끄고 5명은 응급조치, 10명은 대피유도를 한다’는 병원 자체 ‘야간 화재 발생 시 행동요령’에 따라 움직이기엔 인력이 더욱 부족했다. 병원 직원들은 소방관이 별관 밖으로 데리고 나온 환자들에 대해 응급조치 정도를 했다. 익명을 원한 한 유족은 “사망한 간호조무사를 빼면 연기를 마셔 입원한 직원은 1명뿐”이라며 “환자를 구하러 들어간 직원이 1명이라는 얘긴데 말이 되느냐”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소방관 4명은 불 끄기에 여념이 없었다. 0시44분 추가로 소방차와 소방관이 온 뒤에야 본격적인 구조가 시작됐다. 구급차는 그보다 더 늦은 0시47분에 도착했다. 다른 데 출동했다가 급히 오는 길이었다. 이 때문에 소방관에 의해 밖으로 나오게 된 환자들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치료 장비를 갖춘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유족들은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는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희생된 환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당국은 또 오전 1시50분에야 “출동해 현장에 응급의료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목포 한국병원에 요청했다. 70㎞ 넘게 떨어진 목포 한국병원 팀은 오전 2시56분에야 효사랑 요양병원에 다다랐다.

 ◆건성건성 안전 점검=이 병원은 21일 장성군 보건소가 실시한 의료기관 안전 점검에서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안전사고 및 화재 시 대처방법, 화재 및 안전사고 교육·훈련 같은 항목 모두 ‘이상 없음’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불이 나자 병원 직원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점검을 실시한 장성군 보건소 직원 이갑례씨는 “직원들이 (훈련 같은 것을) 했다고 하길래 믿고 동그라미를 쳤다”고 말했다. 

장성=위성욱·권철암·채승기·민경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