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탑승자의 송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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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에 강제착륙 당했던 대한항공 여객기의 승객과 승무원 중 기장과 항법사를 제외한 1백6명과 2구의 유해가 송환되었다.
송환자들을 통해 산발적으로 밝혀진 사건경위는 방향기기의 고장으로 KAL기가 모르는 새에 소련영공을 침범했고, 소련전투기의 총격으로 사상자와 기체파손을 입어 비상착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향기기가 왜, 어떻게 고장이 났는지 아직 확실히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송무원들이 소련령인지를 짐작도 못했던 사실로 미루어 소련령 침범이 기기고장으로 인한 불가항력의 사태였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영공을 침범했을 경우 국제법과 국제관행에 의한 처분은 그 경위에 따라 몇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고의에 의한 경우다. 정보수집을 위한 간첩비행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 경우에는 하토국의 국내법에 따라 기체는 압수되고 승무원은 처벌을 받게 된다.
둘째는 과실에 의한 경우다. 이 경우는 과실의 정도에 따라 국내법에 의한 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째는 기체의 고장, 기상의 급변, 납치 등 불가항력의 사태에 의한 경우다. 이 경우에는 재난을 피하기 위한 긴급피난일 수도 있고, 기기의 고장으로 영공침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때도 있다. 이런 불가항력의 경우에는 여객·승무원과 기체의 즉각 송환은 물론 항공기가 고장인 경우에는 수리를 해주든가, 수리를 위한 협조를 제공해 주는 것이 국제관습법의 원칙이다.
이번 KAL기 사건은 바로 이 세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직 풀려나지 않은 기장과 항법사도 『경위조사』를 끝내는 즉시 석방되어야 만 한다.
이번 사건은 기기고장에 의한 것으로 조종사나 항법사의 고의나 과실 등 귀책 사유가 없다는 점에서 지난 71년 과실로 소련영해를 침범했던 제55동성호(선장 문종하)의 경우와도 다르다.
소련당국도 미국을 통해 두사람을 오래 억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니 다른 승무원과 승객 송환에서 보여준 기민성을 기장과 항법사 송환에서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번 사건과정에서 한가지 유감스러운 일은 소련전투기가 민간 여객기에 대해 총격을 가했다는 증언이다.
소련측은 KAL기가 착륙명령을 거부했기 떄문이라고 하나, 소련전투기와 KAL기 간은 주파수가 맞지않아 교신이 안되는 사정이었던 만큼 좀더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을까 아쉽다.
기내에 불이 켜져 있어 여객기가 분명한 이상 설혹 사격을 하더라도 위협사격 정도로 끝냈어야 하지는 않았겠는가. 사고가 발생한 공역이 소련의 중요한 군사시설 상공이라고는 하지만, 민간여객기에 대한 이러한 총격문제는 인도적인 고려와 민간항공의 안전운항이란 관점에서 앞으로 국제적으로 확고한 규제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되겠다.
KAL기의 인명피해가 그만하기가 불행 중 다행이지, 만일 연료통이나 「엔진」이 피격을 당해 격추라도 되었더라면 얼마나 무참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아뭏든 당면과제는 기장과 항법사의 조속한 송환과 기체의 반환이다. 이를 위해 우방 및 국제기구를 통한 다각적인 외교 노력으로 이번의 불행한 사건이 하루 빨리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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