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동체착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극한 상황에서는 가끔 영웅이 탄생된다. 그리고 이 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적을 낳기도 한다.
이번에 2명의 사망자를 제외한 KAL기 탑승자 1백8명 전원이 살아 돌아올 수 있게된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만약에 「미그」기의 총격으로 기체가 3만m의 고공에서 대파되었다면…, 또는 만약에 불시착이라도 강행할 만한 「켐」호를 찾아내지 못했다면…이런 상상을 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기장은 불시착할 곳을 찾아 1시간반 이상을 공중에서 헤매야만 했다고 한다. 이때 이미 왼쪽 날개는 5분의 1이나 달아나 없었다.
기름도 바닥이 나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기장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뭣을 각오하고 있었을까?
눈에 덮인 호수 위에 비상착륙을 강행할 때, 그 「파일러트」는 과연 얼마나 뚜렷한 자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김포 비행장에서 진눈깨비가 2분의 1「인치」만 내려도, 또 단단한 싸락눈이 6「인치」만 내려도 비행기는 이착륙을 하지 못한다.
비행기 조종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중요한 것은 착륙의 기술이다. 「보잉」707은 무게가 2백t에 가깝다. 그처럼 육중한 기체가 시속 2백50km 정도의 속력을 지닌 채 착륙한다. 따라서 활주로도 2천m 이상이나 길어야 한다.
그러나 「켐」호상에 불시착했을 때 승객들은 조금도 충격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정녕 신기였을까, 아니면 기적이었을까.
착륙에는 3단계가 있다. 첫째 될 수 있는데까지 속도를 낮춰가며 접지한다. 그 다음에 활주로에 근접하면서부터는 「엔진」을 끄고 활주 상태에 들어간다. 그리고 활주로에 「터치·다운」하면 날개를 올려 「플레어」시키면서 이번에는 역추진 「엔진」을 걸어 정지 위치까지 미끄러져 간다.
이 세 동작이 모두 완벽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착지까지가 훌륭했어도 얼음 위에서는 안전을 기할 수는 없다.
기체가 어떻게 미끄러져 나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브레이크」 장치도 얼음 위에서는 소용이 없다.
호수 자체가 얼마나 두껍게 얼었는지 알 길이 없는 빙판 위에 착륙한 것부터가 무모했다고 말하는 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들어온 소식으론 기장은 호수 한가운데가 아니라 호수가에 내렸다고 한다. 가장 얼음이 두터운 곳을 골랐던 것 같다.
김창규 기장은 비행 경력 20년의 「베테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련한 조종술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던 힘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철저한 「프러페셔널리즘」의 신념이라 해도 좋다. 위기를 이겨내는 강인만 의지라고 할만도 할 것이다. 혹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인력을 다한다는 무아의 경지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밝히기 의해서도 하루 빨리 그가 항법사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