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주인은 초과 수요|성장보다 안정에 역점 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 경제의 GNP에 대한 대외 의존도(용역 포함)가 85%에 달하였다. 대외 의존도가 이와 같이 계속 높아진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해외 경제 사정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됨은 물론 세계 경제 속의 한국 경제가 국제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국제화가 진척될수록 우리나라 경제의 자율적인 운영에 있어서도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경제 현실에 대처하는 정책방향 설정에 있어서도 한국 경제만은 예외적이라는 관념에서부터 좀더 내외 경제의 움직임에 조화를 이룬 합리적 정책 도구를 모색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세계 경제는 감속 성장 하에서 「인플레」와 고전하고 있으며 한편 선진제국은 국제수지 사정의 악화로 보호무역 적인 경향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경제를 회복 국면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견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삼두마차인 미·일·서독은 각국이 처하고 있는 경제 사정과 상반되는 이해관계로 세계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확립할 수 있는 정책적 조화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래서 국제통화 금융 시장에 있어서 미화의 약세와 일본 「엔」화 및 서독 「마르크」화의 강세로 국제통화의 분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불투명한 세계 경제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는 금년에 경제 성장률 10%, 물가 상승율 10% 내외, 통화량 증가 30%, 그리고 약간의 경상 수지 적자를, 주요 경제 지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제 연초 이래의 경제 동향을 개관해 볼 때 경기예고지표는 계속 상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 활동도 착실한 신장세를 보이고 수출입도 다같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젯점으로 제기되는 것은 통화와 물가 사정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3월 들어 통화량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고 물가 상승세도 다소 진정되는 듯한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통화가 지난해의 40%증가에 이어 금년에 36%나 증가하였는데 이것이 과연 적정한 통화 공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가가 1·4분기 중 연율로 도매 물가가 18%, 그리고 소비자 물가가 26%나 상승하였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통화 정세 아래 국민이 생각하고 있는 화폐는 마치 통화 이론에서 말하는 뜨거운 감자(hot potato theory)와 같이 보고 있다. 국민은 뜨거운 감자를 보유하지 않고 환물하려고만 하고 있다. 이 환물의 대상이 바로 「아파트」 및 부동산이 되어 이들 시세를 급등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선량한 국민은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있다.
물가는 인체의 체온계와 같이 경제를 진단하는 온도계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이 통화를 보유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통화의 유통 속도를 가속화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피셔」의 교환 방정식을 소개할 필요도 없이 통화량의 공급이 같다 하더라도 통화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구매력이 증대하기 때문에 통화를 더욱 증대시킨 것과 다름이 없다.
물가가 연율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마치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 경제가 과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가가 상승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노임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을 주인으로 하는「코스트·푸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화 증발에 따른 초과수요에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회임 기간이 긴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지출이 물자 공급의 뒷받침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 일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에게 널리 만연된 「인플레」심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꺾어야겠다. 성장과 안정은 서로 이해 득실 관계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후자에 좀더 정책적 역점을 두어야 할 시기에 놓여 있다고 믿는다. 【박기순 <한은 특수 연구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