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유독가스 순식간에 치솟아 … 2층서만 6명 희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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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불이 난 경기도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에선 방화셔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연기와 불길이 위로 번져 희생자를 키웠다.

 화재는 지하 1층 리모델링 현장에서 용접기사가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고 가스관을 용접하면서 일어났다. 천장부터 불이 붙었다. 이날 진화작업을 지휘한 서은석 일산소방서장은 “지하 1층 내부에 군데군데 설치된 방화셔터가 내려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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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뿐 아니라 연기까지 차단하는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자 유독가스가 건물 안에 퍼졌다. 소방 당국은 스티로폼 같은 건자재와 페인트가 타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립대 제진주(소방방재학) 겸임교수는 “유독가스는 마시면 몇 초안에 의식을 잃게 되고, 그 상태에서 계속흡입하면 결국 사망에 이른다”고 말했다.

 가스는 특히 위층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사망자 7명 중 6명이 지상 2층에서 나온 이유다. 이들은 사무실과 화장실 등 폐쇄된 공간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1명은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발견됐다. 강원대 우성천(소방방재학) 교수는 “연기는 옆으로는 별로 빠르게 퍼지지 않지만 위로는 1초에 3~5m 올라간다”며 “방화셔터만 작동했다면 위쪽에서 발생한 희생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올 초에 한 시설 점검때는 지하 1층 방화셔터가 제대로 움직였다. 그러다 막상 불이 나자 꼼짝 않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도 일산경찰서는 장비에 이상이 생겼거나, 내부공사 때문에 일시적으로 작동장치를 껐거나, 리모델링을 위해 아예 방화셔터 위치를 옮기려고 셔터를 빼놓았을 가능성 등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 장비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드러나면 건물 관리업체와 건물주에게, 공사를 하려고 작동장치를 껐다면 시공업체 등에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지하 1층 스프링클러 역시 일부가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올 초 소방시설 점검에서는 스프링클러 역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이와 함께 지하 1층 리모델링 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이 용접을 하면서 주변에 불이 붙기 쉬운 물건들을 치우고, 불똥이 튀어도 불이 잘 옮겨붙지 않는 ‘방염 부직포’를 주변과 바닥에 덮고 작업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이런 안전수칙을 지켰다면 불이 천천히 번져 유독성 가스가 덜 나오고 피해도 줄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처음 불이 천장에 즉시 옮겨붙은 이유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지하 1층 천장에 불이 잘 붙지 않는 난연재(難燃材)인 ‘석고보드 2겹 무석면 텍스’를 썼다고 고양시청에 신고했다. 하지만 불이 날 때 지하 1층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은 “불이 천장에 바로 옮겨붙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경찰 측은 “신고와 달리 실제로는 난연재를 쓰지 않았거나 불량건자재가 납품됐을 가능성 등을 모두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종합터미널은 천장뿐 아니라 벽 또한 난연재인 석고보드 경량 칸막이로 만들었다고 신고했다.

고양=최모란·이상화·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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