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 입은 영양사가 유기농 매장 관리, 이익 5% 기부 … 비싸도 찾는 '홀푸드마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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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장을 볼 때 사람들은 당연히 갈치·두부 같은 상품을 사러 간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다르다.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상품보다 경험이다. 어떤 이는 쾌적하고 밝은 매장, 다양한 구색과 깔끔한 진열 같은 경험을 중시해 대형마트를 선호한다. 전통시장을 주로 찾는 이는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상품 배치, 상인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물건 값을 흥정하는 재미 때문에 이곳을 다시 찾는 것이다.

 미국의 고급 식품 수퍼체인 홀푸드마켓은 이처럼 ‘식품이 아니라 독특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판매한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여 성공한 기업이다. 1980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직원 19명으로 첫 매장을 열었던 이 가게는 끊임없이 미국 각지의 식료품점과 기업을 인수하며 성장했다. 2000년대 초 지금과 같은 대형 기업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식품 수퍼마켓은 경쟁이 심하고 마진율이 매우 낮으며 성장이 정체된 산업이었다.

 홀푸드마켓은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건강한 식료품점입니다(America’s Healthiest Grocery Store)’를 구호로 내걸었다. 매장은 품질 좋은 자연산 유기농 식재료로 채웠다. 이를 위해 각 지역 점포 관리자에게 상당한 권한을 줬다. 그래야 이들이 이른바 ‘로컬 푸드’를 납품할 생산자를 적극 발굴, 싱싱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진열대에 올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의 고객 응대도 여느 수퍼마켓과 달라야 했다. 영양사를 채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매장에 진열할 과일 카트를 끌고 가는 직원이 우리가 흔히 아는 마트 유니폼 대신 흰 영양사 가운을 입고 있다. 매장에서 이를 본 고객은 ‘여기 직원은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는다. 홀푸드마켓은 ‘그린 이니셔티브’라는 사내 캠페인을 통해 폐기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또 매년 이익의 5%를 지역사회 또는 비정부단체(NGO)에 기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홀푸드마켓은 고객에게 보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 회사에 대해 ‘건강한 유기농 식품을 파는 고급 수퍼이면서 동시에 착한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또 다른 마트보다 값이 비싼데도 ‘여기서 쇼핑을 하는 것은 내 건강을 위한 일이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홀푸드마켓 매출은 매년 평균 12%씩 성장했고 세전 이자 지급 전 이익(EBITDA)은 연평균 17%씩 늘었다. 홀푸드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체된 식품 판매업에서도 얼마든지 혁신적인 돌파구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황형준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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