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처럼 … 인류 난제 해결에 172억 상금 건 영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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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에선 사회적 난제 해결에 1000만 파운드를 내건 상이 제정됐다. 우리 돈으로 172억원. 노벨상 상금이 약 16억원(부문별 1000만 스웨덴 크로나)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상금이다. 이름하여 ‘경도상(經度賞·Longitude Prize)’이다.

 그 유래는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14년 영국 의회에서 법령 하나가 제정됐다. 경도상의 근거가 된 ‘경도법’이다. 바다에서 정확하게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이에게 2만 파운드(현재 100만 파운드 상당)의 상금을 수여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밀한 경도 측정은 지상과제였다. 항해 중 선박이 좌초돼 무수한 이가 목숨을 잃었는데 선박이 경도 측정을 제대로 못한 경우가 많아서였다. 1707년 10월 영국해협을 가로지르던 영국 소함대도 그런 경우였다. 포츠머스로 향한다는 게 그만 한참 더 대서양 쪽으로 향했고 전함 4척이 영국의 서쪽 땅끝마을 격인 실리제도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2000여 명이 숨졌다. 역시 경도 측정이 틀려서였다.

 사실 위도 측정은 간단했다.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면 됐다. 경도는 간단치 않았다. 현지의 시간뿐 아니라 출발지의 시간도 알아야 했다. 둘 사이에 1시간 차이가 난다면 경도 15도, 2시간 차이라면 30도 간격이었다. 현지시간은 자오선만 살피면 됐다. 출발지 시간을 아는 게 문제였다. 뱃사람들이 출발지에 맞춘 추시계를 가지고 다니긴 했다. 그러나 배가 흔들리는 데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치 않아 추가 규칙적으로 움직이질 못했다. 영국 의회가 막대한 상금을 내걸고 공모전을 한 이유였다.

 결국 링컨셔 지방의 한 목수가 해상 정밀시계인 크로노미터를 만들어냈다. 1735년 시연한 첫 모델(H1)은 34㎏에 달하는 제법 큰 장치였다. 24년 뒤 H4에 이르러선 지름이 13㎝인 회중시계 정도로 줄었다. 바로 존 해리슨의 발명품이었다. H4를 개발했을 때 66세였던 그는 “내가 이 정도로나마 크로노미터를 완성할 수 있도록 이렇게 오래 살게 해 주신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상금은 우여곡절 끝에 72세 때 받았다.

 300년이 흘러 다시 ‘경도위원회’가 꾸려졌으며 경도상이 만들어졌다. 이번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제안으로 영국 공익재단 네스타가 주도했다. 상금도 1000만 파운드로 올렸다.

 문제의식은 300년 전과 동일했다. 인류에게 절체절명인 난제 해결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18세기엔 한 가지 문제로 수렴할 수 있었다며 이젠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사회적 문제가 많다는 점”(경도위원회 위원장 마틴 리스 경)이다.

 이 때문에 경도위원회는 19일(현지시간) 6가지 난제를 발표했다. 비행·식량·치매·신체마비·물·항생제 분야다. 사람들에게 하나를 고르란 얘기다. 21일 투표에 들어가고 다음 달 25일 결과가 발표된다. 경도위원회는 후속작업으로 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할 예정이다. BBC는 “어딘가에 스스로 과학자라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우리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영감을 제시할, 현대의 존 해리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네스타의 제프 멀건 대표도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의 대학, 최고의 과학자에게 찾아가 해결해 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18세기 ‘경도상’이 그랬듯 공론에 부쳐 누구라도 해법을 찾도록 하는 게 나은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

 첫 경도상이 바다에서 무수한 생명을 구하고 항해의 역사를 바꿨듯 300년 후의 경도상도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영국 사회는 기대하고 있다. 다만 “당선 아이디어는 2020년께 정해질 것”(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이라고 하니 좀 기다리긴 해야겠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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