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 중 둘 짐쌌다 … 대구 통신골목 몰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휴대폰 매장이 즐비했던 동성로1길의 점포 곳곳이 텅 비어 있거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일 시민들이 폐업한 휴대폰 매장 앞을 지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제 휴대전화는 한물갔어요. 뜯고 식당으로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대구 중구 봉산육거리에서 대구백화점으로 이어지는 동성로 입구의 한 상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이모(42·대구 대봉동)씨는 “상가를 새로 꾸미느라 요즘 이 일대 곳곳이 분주하다”고 말했다. 상가 주변은 2005년부터 ‘영남권 최대의 휴대전화 판매점 밀집지역’으로 불리는 동성로 통신골목. 300m 남짓한 골목에 휴대전화 판매점이 100여 곳이나 모여 있어 이렇게 불렸다. ‘공짜로 드립니다’ ‘지구에서 제일 쌉니다’ 등 휴대전화 판매점의 이색 간판도 이곳이 원조다.

 그런데 통신골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판매점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커피전문점·식당 등이 들어서고 있다.

이날 통신골목을 돌며 확인한 휴대전화 판매점은 36곳. 60여 곳은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다. 2009년부터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한 조모(39)씨는 “불과 1년 사이 20~30곳이 골목을 떠난 것 같다. 올 들어서도 업종을 바꾸는 상가가 이어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중구청이 지난해 12월 말 동성로의 휴대전화 판매점 현황을 조사한 결과, 통신골목에는 40여 곳이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통신골목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위축되고 있다. 그동안은 판매점 간 과열경쟁으로 다른 곳보다 싼 값에 휴대전화 구입이 가능했다. 부산이나 울산, 경북에서도 휴대전화를 사러 동성로를 찾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가 임대료가 필요 없는 인터넷 휴대전화 판매상이 등장하고, 우체국과 편의점·TV홈쇼핑까지 휴대전화 판매에 나서면서 통신골목은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대구경북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임규채 연구원은 “포화 상태에 이른 휴대전화 보급과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감소 등이 통신골목을 변화시켰다. 국내 휴대전화 판매는 이제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불황 상태”라고 말했다.

 동성로 상권의 한 축을 이루던 통신골목의 불황은 전체 상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인들은 하루 50만이 오가는 동성로의 유동인구가 최근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말한다. 2·28공원 앞 A커피전문점 업주는 “2012년까지 하루 100잔을 팔던 커피가 지난해부터 20%쯤 줄어든 것 같다. 통신골목이 썰렁해진 게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일로 앞 한 노점상인은 “동성로 하면 통신골목인데…다른 상인들도 힘들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통신골목이 쇠퇴하면서 기업에 휴대전화를 조립해 납품하는 지역 하청업체도 어려워지고 있다. 성서공단에 위치한 직원 600명의 상장기업 태양기전이 대표적이다. 최근 조립 물량이 줄어 이달 초부터 직원들에게 연차휴가를 권장하며 인건비를 줄여나가고 있다. 태양기전 관계자는 “연차라기보다 사실상 무급휴가를 주고 있다고 보면 된다. 30% 이상의 생산직 직원이 돌아가며 쉬고 있다. 휴대전화가 포화 상태여서 산업 자체가 불황을 맞고 통신골목뿐 아니라 제조공장까지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