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10인 일일이 호명 "이분들이 대한민국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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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19일 오후 진도군청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담화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해경 해체’ 방침과 관련해 구조 작업에 투입된 해경 인원의 감소를 염려하며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진도=오종택 기자]
본지 5월 13일자 1면 ‘세월호 영웅’ 보도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대국민담화에서 세월호 영웅들의 이름을 부르며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유가족과의 만남에서도 눈물을 훔친 적이 있지만 공식석상에서 이처럼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다.

 담화의 대부분을 할애해 해경 해체, 안전행정부 축소 등 국가 개조 방향을 소개할 때 박 대통령은 예의 단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담화 말미에 가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고 권혁규군”이라고 한 뒤 박 대통령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고 정차웅군”을 부르면서는 단어 중간중간 숨을 멈추며 감정을 절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어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하고도 정작 본인은 돌아오지 못한 고 최덕하군”이라고 호명하며 목소리가 떨렸고, 눈을 심하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고 남윤철·최혜정 선생님”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고 박지영·김기웅·정현선님과 양대홍 사무장님”까지 부르고선 눈물을 쏟았다. 박 대통령은 울먹이며 “민간 잠수사 고 이광욱님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며 “이런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잠긴 목소리로 힘주어 “4월 16일을 국민 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며 담화를 마무리한 박 대통령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연단에서 퇴장했다. 이들을 ‘의인’이 아닌 ‘영웅’으로 칭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비애’와 ‘번민’ 등의 표현으로 심경을 나타냈다. 담화 시작 직후 사과와 함께 허리를 숙인 박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다”고 안쓰러운 마음을 표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든다”고도 했다.

 평소의 박 대통령답지 않은 감정적 태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내놓은 기존의 사과가 미흡하다는 비판 여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기관의 잘못을 추궁하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보듬는 ‘엄마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종교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팽목항 방문(4일), 조계사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참석(6일), 유가족 대표 청와대 면담(16일)에서도 죄송하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서울대 박원호(정치학) 교수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은 고무적”이라며 “다만 진상 규명 부분이 더 강조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민담화를 마친 박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로 출발했다. 20일 개최되는 UAE 원전 1호기 원자로 설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당초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쿠웨이트·UAE·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3개국 방문을 모두 포기하려 했지만 고심 끝에 UAE ‘원 포인트 순방’을 결정했다. 이번 원자로 설치 행사가 한국형 원자로의 첫 해외 데뷔 무대 격이기 때문이다. 보통 원전을 건설하면 1기에 50억 달러를 벌 수 있다. 여기에 원전 운영에 따른 추가 수익이 1기에 50억 달러 정도 뒤따른다. 2009년 12월 한전은 UAE 원전 4기를 수주했다. UAE는 15~30년간 계속될 원전 운영도 한국이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

글=유지혜·허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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