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오늘 '20분 담화' … 획기적 수습책 담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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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날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람페두사로 향하던 이민자들이 탄 선박이 침몰했을 때 이곳을 방문해 강론한 내용인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고 불의에 대한 타협과 우리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편협함, 무관심에 대해 용서를 청하라”를 인용했다. 추기경 위로 보이는 것은 `서유럽 수도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베네딕토상이다. [뉴시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낮 12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에 참석해 주먹을 쥐고 가슴을 치며 이렇게 세 번 외쳤다. 1000여 명의 미사 참석자들과 함께 이렇게 참회 기도를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성전 맨 앞줄에 앉았다. 오른편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왼편에는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이 자리했다. 박 대통령은 미사가 진행되는 내내 차분했지만 애통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미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는 인재’라는 내용의 강론을 했다. 염 추기경은 강론에서 “세월호 참사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희생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이번 참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시대에 보여주신 징표를 깨달아야 한다. 정부, 지도자, 교회, 개개인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이어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고 불의에 대한 타협과 우리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편협함, 무관심에 대해 용서를 청하십시오”란 교황 프란치스코의 강론도 인용했다.

 박 대통령은 염 추기경의 강론을 10분 동안 경청했다. 또 평화예식 순서에는 주례사제단을 향해 합장하고 목례한 뒤 주변 신자들과 “평화를 빕니다”라며 인사를 나눴고, 봉헌예식 때는 앞으로 나와 헌금 봉투를 바구니에 넣었다.

 민경욱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미사에서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과 함께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고 유가족들이 하루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국민도 세월호 충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부처님오신날에도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다.

 미사를 마친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가 19일 발표할 대국민담화 내용을 밤늦게까지 다듬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세월호 정국을 가를 변곡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에서 20여 분간 ‘세월호 관련 및 새로운 국가운영 방안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당초 지난주 15~16일께 발표하려다 폭넓은 수렴과 희생자·실종자 가족 면담 과정 등을 거치며 시기가 다소 미뤄졌다. 특히 민심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담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국정 운영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청와대를 더 신중하게 만들었다.

 청와대는 담화의 내용과 형식를 놓고 고민했다. 담화 장소를 놓고 ‘팽목항 담화’ 등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사과 형식을 놓고도 ‘총선을 앞둔 2004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 시절, 천막당사행과 조계사에서의 108배를 참고해야 한다’는 건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20분 담화’의 내용에 승부를 거는 방식을 택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개각 구상은 밝히지 않되 담화 후 총리 지명 등 개각 수순에 들어갈 전망이다. “개각은 대국민담화에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유가족 면담에서 “개각을 비롯해 후속 조치들을 면밀하게 세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개각은 대국민담화의 후속 조치 중 핵심으로 꼽힌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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