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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다시 띄우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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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아연
작가

# 풍경 1 : 아들애가 친구와 공놀이를 하다 공이 찻길을 가로질러 굴러갔단다. 그런데 길을 건널 때는 항상 어른과 함께 건너야 한다며 친구가 제 엄마를 찾아 집엘 갔다나? 어떻게 매번 그러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우리 애는 아랑곳 않고 친구 녀석은 배운 대로 했나 보다. 길을 함부로 건너서는 안 되지만, 마침 차도 안 오는데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공을 줍지 못할 게 뭐냐며 우리애가 답답해 했다.(나도 답답했다.)

 # 풍경 2 : 하굣길, 자동차 뒷좌석에 두 아이를 태워서 가고 있는데 교통 경관이 차를 세웠다. 성큼성큼 다가온 경찰, 차 뒷문을 열더니 아이들의 안전벨트가 너무 느슨하다며 고쳐 매 주고는 재차 당기며 확인까지 했다. 벨트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몸에 꼭 맞추지 않았다고 차를 세운 것도 놀라운 데다, 아이들이 타고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까지 유심히 보고 있었다는 데 혀가 내둘릴 정도였다. 공연히 경찰만 보면 겁이 나서 무조건 미안하다고 했더니 당신 자식들의 안전에 관한 일이니 내게 미안하고 말고 할 게 없다며 유유히 사라졌다.

 # 풍경 3 : 극장에 갔는데 바로 우리 앞에서 표가 매진됐다. 매표 직원이 안됐다 싶었는지 좌석 사이에 보조 의자를 놓고 봐도 괜찮다면 입장시켜 주겠다고 했다. 영화 시작 후 10여 분이 지났을까, 극장 관리인이 나타나 환불을 해줄 테니 돌아가 달라며 정중히 사과를 하는 게 아닌가. 혹 극장에 불이 날 경우 통로가 막혀 있으면 대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를 들면서. 통로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보조 의자에 앉은 사람은 우리 가족뿐인데도 안전관리에 문제가 될 수 있다니. 하지만 원칙을 지키겠다는 데에야 할 말이 없었다.

 이상은 필자가 1999년 호주 이민 생활 7년 즈음에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이다. 그 밖에도 안전벨트를 ‘하면서’ (띠를 완전하게 두른 후 차를 움직여야 원칙) 차를 출발시켰다고 벌금을 물게 하질 않나, 바다에서 암게와 어린 게(자를 들이대며 길이를 잰다)를 잡다 걸려 ‘식겁’한 일 등 안전과 원칙 위반에 얽힌 한국 이민자들의 ‘호주살이’는 천태만상이다. 웬만큼 몸에 익히기 전까진 매운 시집살이 저리 가라다.

 도무지 예외나 융통성이라곤 없으니 나를 포함한 한인들은 이런 ‘맹꽁이’처럼 느껴지는 처사에 처음에는 화가 나고, 좀 지나면 미칠 것 같지만 종당엔 포기하고 순응하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적어도 호주에 계속 살려면.

 똑같이 4개월 된 원숭이 아기와 인간 아기의 인지를 비교한 실험이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원숭이 아기는 눈을 반짝이며 영리하게 이것저것 아는 체를 하고 외부와 소통을 하는 반면 같은 나이의 사람 아기에게는 이렇다 할 자각도,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의 뇌에는 억만 개의 뉴런이 있어서 이것들이 제자리를 잡고 일관성 있는 질서의 형태로 발전하려면 오랜 시간에 걸친 환경적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이 이론대로라면 원칙을 고수하고 안전 의식을 내면화, 체질화시키려면 일정 기간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속된 말로 ‘꼼수’나 ‘잔머리’가 안 통하게 하려면, ‘곧이곧대로’가 몸에 배게 하려면, 수많은 뉴런에 질서를 부여하려면 노래 제목처럼 어려서부터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주입시켜야 한단 소리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사고’라기보다 ‘범죄’라는 정황에 무게가 쏠리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월호’ 이후다. 범인을 잡아다 벌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해도 하루아침에 원리원칙과, 기본과, 안전에 충실한 나라로 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사회가 막 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 두뇌 기능상 새로운 질서와 체계가 인식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제 ‘세월호’ 사건 관련자 수사와 처벌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다음 세대 구성원의 ‘뉴런’에 새 질서를 잡는 것에 힘을 써야 할 것 같다.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닌데다, 무엇보다 세 살 버릇 여든 가기에.

신아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