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구명조끼 입는 법 몰라" 쩔쩔맨 승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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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2일 오후 7시 부산연안여객선터미널. 제주항으로 가는 여객선 서경파라다이스호(6626t·정원 613명)가 출발했다. 승객 113명과 차량 76대, 화물 913t을 싣고서였다.

 출발 25분이 지나 선장의 첫 안내방송이 나왔다. “날씨는 양호합니다. 내일 오전 6시30분 제주에 도착합니다. 안전을 위해 과도한 음주는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승객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구명조끼가 있는 곳과 입는 법 소개, 비상시 행동지침 안내 등은 없었다. 어디선가 “배 타면 구명조끼 사용법부터 꼭 알아두라고 자식들이 얘기했는데…”란 말이 나왔다. 정관훈(82·부산 해운대구)씨는 승무원을 찾아가 “구명조끼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승무원은 “침대 밑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거기엔 구명조끼가 없었다. 헤매다 객실 복도에서 구명조끼 보관함을 발견했다. 그것도 비어 있었다. 다른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세 번째 보관함을 열어보고서야 구명조끼를 손에 쥐었다. 세월호 사고가 나고 한 달. 연안여객선 운영사들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안전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비상탈출구는 막혀 있었다.

 서경파라다이스호 승무원조차 구명조끼 착용법을 몰랐다. “알려 달라”는 승객들 요청에 구명조끼를 입어 보이던 승무원은 어떤 끈을 어떤 고리에 연결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맸다. 그러더니 “신형이라 기존 것과 좀 다르다”며 “조끼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잘 고정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당장 “승무원도 모르는 걸 승객들이 어떻게 착용하란 말이냐”(정문자·76·울산 중구·여)라는 호통이 떨어졌다. 외국인 승객들은 더 불안해했다.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가고 있다는 라라 란(40·대만·여)는 “영어 안내가 없어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경파라다이스호만이 아니었다. 13일 오전 9시 경북 포항여객선터미널을 떠나 울릉도로 가는 썬플라워호(2394t·정원 920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항 직전 구명조끼 착용법과 비상시 행동 요령을 알리는 동영상이 나왔지만 엔진 소리에 묻혀 설명이 들리지 않았다. 동영상을 보던 김순덕(53·대구 대명동)씨는 “우예 한단 말이고(어떻게 하란 말이야)”라고 했다. 구명조끼는 낡고 먼지투성이였다. 일부 구명조끼는 야간에 바다에 빠진 위치를 알려주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객선 2층 2번 비상출구 앞에서는 아주머니 셋이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이 들었다. 모두 6곳 비상탈출구 중 4곳이 이처럼 승객 또는 짐으로 막힌 상태였다. 승무원은 이대로 방치했다. 익명을 요구한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했다가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로 달라진 것은 표를 끊고 배를 탈 때 신원 확인을 철저히 한다는 것 정도였다. 화물칸에 실은 차량 역시 묶어 고정시켰다. 서경파라다이스호를 여러 차례 탔다는 한 승객은 “세월호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고 귀띔했다. 서경파라다이스호는 11시간30분 항해를 마친 뒤 제주연안여객터미널을 앞두고 “곧 도착한다. 객실 열쇠를 반납한다”는 안내방송을 했다. 승객들이 배에 오른 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 방송이었다. 끝까지 안전을 위한 안내는 없었다.

 해양경찰청 ‘여객선안전관리지침’에는 ‘선장은 출항 후 모니터 및 선내 방송시설을 이용하거나 선원의 시범을 통해 여객(승객)에게 구명동의 사용법 등을 안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어겨도 처벌하지 않는 단순 지침일 뿐이다. 한국해양대 윤종휘(해양경찰학) 교수는 “따르지 않으면 사법처리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호수 관광선도 안전 사각지대=경북 안동 하회마을에는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관광용 나룻배가 있다. 정원은 12명인데 주말이면 30명 넘게 태우기 일쑤였다. 수심 3m인 강을 건너면서 그랬다. 안동경찰서는 지난 13일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선장 류모(59)씨를 입건했다. 내륙의 강과 호수를 오가는 배들 역시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경상북도와 소방방재청·해양경찰이 세월호 사고 이후 실시한 안전점검에서도 드러났다. 구명조끼를 배 밑바닥에 몰아 넣어둔 관광선도 있었다. 경북 포항운하를 오가는 46인승 크루즈선은 선내 곳곳에 비치해야 할 소화기를 뒤쪽에 전부 몰아뒀다가 적발돼 바로잡도록 지시받았다.

 포항·부산·대구=송의호·차상은·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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