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수련 위한 「교수 없는 교실」…방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매년 이맘때면 으례 맞는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언제나 새삼스러운 여름 한때 젊은 가슴에 낭만이 서리고 온 몸에 힘이 솟게 마련인 한때다. 많은 학생들이 고향을 찾아간다. 또는 산으로, 바다로 흩어지는 「그룹」이 있다. 일부는 농어촌 계몽에 나서기도 하며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근래의 대학생들에게는 방학은 각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평소에 과중한 형식교육이 그들의 생활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숙제나 방학책에 시달리고 과외공부 아니면 학원을 전전하면서 오직 하나의 목표 - 대학에 들어가려고 온 정력을 기울여온 것이다. 난관을 뚫고 요행히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라 해도 여전히 숨을 돌이킬 여유가 많아 보이질 않는다. 전공학과를 선택하기 위해 「텍스트」와 강의「노트」에 매달려야 한다. 여러 차례의 시험을 치르는가 하면 때로는 학사경고를 받지 않게 되나 하며 전전긍긍한다. 고전·역사·문학에 관한 독서를 약간 한다손 치더라도 취미라기보다 차라리 필독목록에 들어있다는 압박감이 앞서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개성 발전의 계기로>
그러므로 방학은 이러한 무미건조하고 옹색한 형식교육과정을 중단시킨 자유교실이다. 그것은 대학생들이 사색과 낭만에 잠기며 해방감과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자기자신의 책임 하에 있는 교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방학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는가의 여부는 실상 학생생활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시간에 쫓겨 못한 일, 하고 싶었으나 미루어둔 계획 등을 방학동안에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성이란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일 수 없다.
개성의 발전이란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제침으로써 가능할 뿐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동·서양의 역사·사상·문학을 폭넓게 섭렵하고 음악과 미술을 감상해야 한다. 근래 우리의 것을 강조하는 나머지 도가 지나쳐 마음의 창을 닫아버리고 암흑과 몽매의 밀실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보다 나은 세계의 문화와 창조적 지혜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호연지기 - 그것은 스스로의 개성을 발견하며 발전시키는데 가장 긴요한 것이다.

<아집에서 해방되어>
방학이란 단순히 학생생활의 정상「리듬」을 정지시키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은 「사색을 위한 시간」이다.
나는 무엇인가 - 자기 자신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본다. 잠시 독서에서 눈을 돌려, 혹은 봉사활동의 틈틈이에, 혹은 산을 타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이사이에서 잠깐이나마 사고에 잠기면서 스스로의 세계를 탐색해야한다.
자기의 능력은 무엇이며 남을 위해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나와 남과의 관계는 형평한가, 나는 진실에 대해 무지한가, 나의 독단과 편견이 남을 괴롭히지는 않는가.
이러한 모든 사고는 단번에 결말이 날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을 통해 자기의 내부세계를 확대하고 아집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계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방학은 보다 자유스럽게 지낼 수 있는 자기수련의 기간이다. 「교수가 없는 교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그것을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개성계발의 기회로써, 또는 내부세계의 사색의 계기로써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차하순<서강대교수·서양사>】

<약력>
▲50∼56년 서울대문리대 사학과
▲57∼59년 서울대대학원 사학과
▲65∼69년 미국 브랜다이스대 대학원 사상사학과 (사학박사)
▲61년 이후 서강대교수 (현 교무처장) 서울평론상(73) 월봉저작상(77)수상
▲저서 『역사와 지성』『역사의 이해』『「르네상스」의 사회와 사상』『서양사총론』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