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돌아와, 카네이션 달아 줘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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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23일째이자 어버이날인 8일 전남 진도 팽목항 인근 해변에서 전북 지역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실종자 귀환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상기도를 하고 있다. [진도=강정현 기자]

어머니는 왼쪽 가슴에 노란색 리본을 달았다. 빨간 카네이션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창백한 얼굴로 애도의 글이 붙여진 천막 앞에서 누군가 걸어 놓은 노란색 종이배를 유심히 바라봤다.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좋은 곳에 태어나 꿈을 펼치렴”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버이날인 8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된 학생의 부모들은 이날도 기약 없이 자식 소식을 기다렸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아들을 두고 있는 어머니는 바다를 향해 절을 올렸다. “○○아, 왜 안 돌아오니. 엄마한테 카네이션 달아 줘야지.”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자원봉사자 김연단(54·여·전남 진도군)씨는 “고2 아들이 아침에 카네이션을 줬는데 애타게 자식을 찾는 부모들을 생각해 집에 놓아 두고 노란 리본을 달았다”며 “슬픔을 함께하던 사람들이 줄면서 가족들이 더욱 초조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항구에는 하루 종일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비닐로 만들어진 임시숙소용 천막은 펄럭펄럭 소리를 냈다. 50명 정도 남은 가족은 좀체 천막에서 나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넘기자 4~5명이 가족대책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게시판에 적힌 구조 상황을 쳐다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전날부터 ‘269명’이라고 돼 있던 희생자 숫자가 좀체 변하지 않아서다.

구조팀은 이날 거센 바람으로 파도가 높게 치는 가운데 구조·수색작업을 계속했으나 오후 늦게 시신 3구를 인양하는 데 그쳤다. 34시간 만의 인양이다. 이에 따라 희생자는 272명, 실종자는 32명이 됐다.

 전날 “구조자 집계에 착오가 있었다”며 구조자 수를 174명에서 172명으로 정정한 해양경찰은 불확실해졌다던 탑승자 수를 이날 476명 그대로 확정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해경이 구조자 수 오류를 보름 넘게 숨겨 온 사실이 드러났다.

구조자 이름이 잘못 기재돼 중복 합산됐다는 점 등을 지난달 21일 알았다는 것이다. 해경은 “사고 발생 후 검증되지 않은 수치가 여러 차례 나와 국민을 혼란케 했다”며 “그래서 탑승자·구조자·실종자 수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거듭하다 보니 발표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희생 학생 학부모 100여 명은 이날 오후 10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영정을 품에 안은 채 KBS 고위 간부가 내부 회식 자리에서 “세월호 희생자보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다”고 한 것에 대해 항의 시위했다.

진도=권철암·최종권 기자, 채승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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