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아프리카」 적화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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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앙골라」 「모잠비크」에 이어 「자이레」가 다시 친소적인 「아프리카」공산주의 혁명의 주전장으로 불붙고있다. 「크렘린」의 전략은 남아-「자이레」-「소말리아」를 꿰뚫는 「아프리카」의 남북관통로를 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중해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중간 길목과,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에 이르는 해로의 제해권은 완전히 「크렘린」의 수중에 들어가고 만다. 「나토」가 필요로 하는 전략물자의 70%를 수송하는 젖줄이 끊기는 셈이다.
자원 공급면에서 볼 때에도 문제는 심각하다. 「크롬」·「다이아몬드」·금·동 등 「아프리카」의 공업용 광물자원에 대한 서방측의 의존도는 앞으로 80년대에 이르러 두곱으로 늘어나리라 한다. 그래서 이 모든 자원의 보고가 묻혀있는 중부이남의 「블랙·아프리카」만 적화시키면 서방측은 저절로 숨통이 막히리라는 것이 「크렘린」의 전지구적인 전략의 일환이다. 「아프리카」의 공산화 전략엔 「크렘린」말고도 「쿠바」의 「카스트로」, 「앙골라」의 「네토」, 「모잠비크」의 「마셸」 3자가 공동 연합전선을 편성하고 있다. 「네토」는 「아프리카」 혁명을 위해 65년께부터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도움을 청해왔었고, 「카스트로」는 중남미에서 좌절당한 혁명수출을 「아프리카」에 대신 수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이레」사태는 결국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한데 얽혀 일어난 돌풍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앙골라」 「쿠바」의 사주를 받아 「모부투」대통령의 「자이레」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구「카탕가」는 원래가 60년 「콩고」독립 때부터 틈만 있으면 분리독립을 꾀해 반란을 일으키던 분쟁지였다.
때마침 그곳엔 서방측의 동광산이 집중돼있기 때문에 미국 「벨기에」「프랑스」에는 「카탕가」확보야말로 중부「아프리카」전략의 최대 핵심으로 돼있다.
그래서 좌경인물인 고 「루뭄바」가 「콩고」의 권력을 잡았을 때엔 서방측은 「모이세·촘베」를 도와 「카탕가」의 분리독립을 지원했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선 사태가 뒤바뀌어 「쿠바」와 「앙골라」가 「카탕가」 분리주의자들을 부추겨 친서방적인 「자이레」중앙정부를 전복하려하고 ,서방측과 중공이 그 반대의 입장에 서게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요, 「자이레」인들의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자이레」를 포함한 「아프리카」문제의 기축은 본래는 민족주의다. 때문에 서방측으로서는 그것을 적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친공화하지 않도록 해야하는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만약 서방측이 60년대 초의 「콩고」사태에서처럼 「아프리카」민족주의전체를 일괄적시하여 맞서 싸울 경우, 문제는 오히려 악화될 우려가 많다.
그 보다는 미국의 「유엔」주재대사 「앤드루·영」이 주장하듯이 「아프리카」의 우파 민족주의 계열을 우군으로 흡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친공계열을 제어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정학적으로 보나 자원면으로 볼 때 「아프리카」대륙은 자유진영의 세계전략상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핵심지역이다. 그런 요지의 친소화를 방지할 수 있는 서방측의 현명한 대책을 촉구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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