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민낯' 구경, 어디든 지하철로 1달러면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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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인 찰리 어셔(왼쪽)가 지하철만 잘 타도 서울 구경 실컷 할 수 있다며 여행기를 썼다. 오른쪽은 친구 리즈 그뢰센. [사진 서울셀렉션]

“지하철로도 얼마든지 비행기나 기차처럼 여행을 다닐 수 있어요. 서울에선 1달러면 되잖아요. 당신이 내리는 곳이 바로 여행지가 되는 겁니다.”

 미국인 찰리 어셔(32·Charlie Usher)에게 지하철은 출퇴근 수단이 아니라 여행수단이다. 그는 서울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런던과 뉴욕에 비해 서울의 지하철이 싸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간된 『찰리와 리즈의 서울 지하철 여행기』에는 그가 어떻게 이 생각을 실천에 옮겼는지가 나타나 있다.

 사실 그는 여행 전문가다. 위스콘신대 영문과에 다니던 시절 마지막 학기를 이탈리아 로마에서 보냈다. 학기를 마치고 3개월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녔다. 이후 여행에 재미를 붙인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뉴질랜드와 호주 등 34개국을 여행 다니며 살았다. 평양과 개성도 다녀왔다.

 그가 2009년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곳이 바로 서울이다. 여기에는 어디든 데려다 주는 서울의 지하철도 한몫했다. 그는 이 지하철을 이용해 여행 다닐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뉴욕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던 친구 리즈 그뢰센(Elizabeth Groeschen)이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2009년 11월에 논현역을 처음 다녀온 것을 계기로 찰리가 운영하는 블로그 ‘Seoul Sub→Urban’에 차곡차곡 여행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방문할 지하철역이 정해지면 먼저 그 지역의 역사와 명소 등을 조사했다. 실제 역에 도착해서는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기록했다. 블로그에 글을 작성할 때는 몇 번 출구에 맛집들이 있는지 표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묶여 나온 게 바로 지하철 여행기 책이다. 무려 140여 개 지하철역이 나온다.

 물론 지하철을 여행 수단으로 받아들이기가 꼭 쉽지는 않다. 그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다 보면 너무 바빠서 주위를 그냥 지나친다는 사실을 안다”면서 “단지 지하철역에 내리거든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 무심코 지나친 곳들이 새롭게 보일 거라는 것이다.

 찰리는 고려대 근처 안암동에 사느라 6호선 보문역을 자주 이용한다. 그래서 근처 동대문역, 동묘앞역, 창신역으로 자주 나들이를 다녀오는 편이다. “이 주변은 봐도 봐도 새로워요.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이 한데 모여 쇼핑을 해요. 30~40년 전 서울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최근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처럼 혁신적인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지요.” 또는 종로 어딘가에 내려 광장시장을 거쳐 동대문역까지 걸어가는 것도 즐긴다. 덕분에 그 길에는 단골 닭칼국수집, 곱창집, 생선구이집이 생겼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성북동도 좋아한다.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길상사며 최순우 옛집과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 등을 줄줄 꿰고 있다. “성북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한성대역에서 걸어 가기가 좀 멀더라고요.”

 그는 이 책이 서울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여행 책에 흔히 나와 있는 경복궁이나 명동, 강남도 가볼 만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간과하는 곳들이 있어요. 이 책이 그런 곳들을 새롭게 조명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찰리는 고향 위스콘신주로 돌아가면 때때로 불평을 하곤 한다. “미국이란 곳이 스타벅스조차 차 타고 가야 하는 곳이거든요. 로스앤젤레스나 휴스턴을 한 번 차 없이 여행해 보세요. 그럼 서울의 지하철이 얼마나 잘 돼 있는지 아실 거예요.”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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