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정리…한국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거액부정 막을 수 없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의 거액부정사건을 계기로 교과서 정책이 전면 재검토되고 있다. 문교부는 우선 현행 검정교과서의 가격구성비 재조정 문제와 유통체계 개선방안 등을 검토하는 한편, 곧 7백81종 8백77책의 중·고교용 검정 교과서를 모두 개편할 방침이다. 뇌물로 관계직원들을 매수, 가격농간과 탈세 등으로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 「검인정」 교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발급현황과 검정 이면을 알아보고 전문가들의 개선방안을 들어본다.

<발간현황>
중·고교용 검정교과서는 모두 1백36과목 7백81중에 8백77책.
연간 발행부수는 76년도의 경우 약 1천8백50만부를 기록했다. 학교별로는 중학용 약 13과목 85종 2백책에 1천3백만원, 인문고교용이 39과목 3백28종 3백91책에 4백만권, 실업고교용이 84과목 2백68종 2백86책에 1백50만권에 이른다. 국정을 포함한 전체교과서 중 검정교과서의 비중은 중학이 88%, 인문고교가 97·5%, 실업고교가 54%.
국정과 검정의 전체비율은 3대7로 검정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중등교과서의 7할을 차지하는 검정교과서를 펴내는 곳이 바로 한국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서울마포구신수동488) 소속의 1백17개 회원사들이다. 이들 회원사는 검인정회사가 73년부터 「중등」·「고등」·「실업」 등 3개 회사로 세분됨에 따라 56개 사는 「중등」, 86개 사가 「고등」, 62개 사가 「실업」에 각각 소속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원사의 대표는 누구나 소속 검인정회사의 주주이자 이사가 된다. 규모는 단1종의 교과서를 발행하는 영세출판사에서 33종을 찍어내는 대규모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 연간 수억원의 배당금을 받고 고층「빌딩」에 고급「세단」을 굴리는 대주주가 있는가 하면 사무실조차 없이 「지형」을 유일한 밑천으로 연간 1백만원 미만의 배당금을 타는 영세주주도 많다.
검인정교과서 주식회사가 출범한 것은 67년12월. 군소 출판업자들이 과당경쟁에서 오는 출현을 막고 보다 많은 이익을 남길 목적에서 발족시킨 것이다. 회사규모는 발족 10년만에 회원사가 30여개 사에서 1백17개 사로, 사무실도 서울종로2가 고려당 제과 2층 전세방에서 현재의 거대한 건물로 성장했다. 연간 외형 거래액은 70여억원, 순이익만도 7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사의 운명권은 대주주를 중심으로 한 10여명의 상임이사들이 잡고 있다. 이들의 주요임무 가운데는 교과서 값 인상과 탈세를 위한 「관리매수작업」을 빼놓을 수 없다. 해마다 교과서가격 사정과 내용 수정 때가 되면 이들의 「대관공작」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왔고, 그럴수록 그들의 사내지위는 높아져 왔다. 그래서 이들 상임이사진은 임기가 1년이지만 몇 차례고 중임되기 일쑤. 월급은 15만원 정도밖에 안되지만 승용차 1대씩이 배정되고 차마비만도 1인당 연간 4백만원씩이 배당된다는 것.
또 판공비 명목으로 지출된 돈이 연간 4억원이며, 이중 3천여만원이 부당폭리를 위한 「대관」교섭비로 쓰여졌다. 게다가 이익배당금을 회사 사채로 돌려 월4푼5리까지의 고리를 받는 등 2중·3중의 재미를 보아온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회원사들은 물론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원래가 상호 경쟁적이고 배타적이기 때문에 「검인정교과서」라는 회사에 대한 애착심보다는 각기 이익배당에 더 큰 관심을 쏟게 마련.
주주총회가 열릴 때면 평소 소외당한 군소 주주들의 불평·불만이 폭발하기 일쑤이며 특히 교과서 전면개편을 전후한 시기엔 회원사간의 검정신청 경쟁은 극에 달한다. 이 때문에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는 출판계의 「복마전」으로까지 불려왔다.

<검인정과정>
검정교과서는 문교부로부터 그 내용이 국가이념과 교육법의 취지에 맞고 학교용 도서로서 적합한가를 심사 받아 발행되는 교과서다. 따라서 원고심사를 신청한 출판업자들간의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교과용도서 저작·검인정령에 따르면 교과서 개편에 의한 검정신청 자격은 ⓛ기존검정교과서 발행자나 ②등록된 출판사로 최근 3년간 2종 이상의 간행물을 발행한 실적이 있는 자로 되어 있다. 이 같은 유자격 출판사들은 서울에서만도 1천여개 사, 전국적으로는 2천여개 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검정심사는 현행법상 문교부가 교과목별로 3명씩 위촉한 검정심사위원들이 실시하는데 일단 검정심사에 합격하면 적어도 5년 동안은 별 걱정 없이 검정교과서 출판사로서 고정수익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문교부의 검정교과서 개편 기미가 보이면 기존 업자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관계직원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비행폭로 위협으로 압력을 가해 개편시기 연기를 획책하기 일쑤. 그런가하면 일단 검정실시 공고가 나면 대부분의 유자격 출판사들은 다투어 검정신청을 해온 것이 종래의 경향이었다.
교과서는 대개 10년 주기로 전면 개편되거나 교육과정이 개정됐을 때 개편된다. 그러나 현행 중·고교 검정 교과서는 10년 전인 67년에 전면 개편된 이래 73, 74년에 교육과정이 개정됐는데도 지금까지 부분 수정밖에 안된 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기존업자들의 압력이 크게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업자들의 경쟁은 검정심사를 둘러싸고 가열된다. 업자들은 심사위원을 매수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문교부는 검정심사의 공정을 위해 심사위원을 사전에 밝히지 않고 심사장소도 비밀리에 지정,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심사를 진행시킨다.
이 때문에 과거 일부 극성 업자들은 1단계로 평소 잘 아는 편수관 등을 매수, 심사위원의 명단과 심사장소등을 알아내고, 2단계로는 심사장소의 사환이나 가정부 등을 매수, 심사위원과의 접촉을 꾀하기도 했다는 것.
또 심사에서 탈락되면 업자들간의 중상모략은 예사였고 검정에 부정이 개재됐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검정불합격 결정취소를 주장한 예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사의원에 대한 중상모략도 적지 않아 공정한 심사를 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과목당 3명의 심사위원으로는 동일 과목에 대해 50∼1백여 개 회사에서 검정신청 해온 원고를 제대로 심사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실정.
문교부는 이 때문에 적어도 업자와 관리가 결탁한 비리와 부정만은 방지하기 위해 검정 교과서 전면 개편에 앞서 행정·제도상의 취약점과 문제점 보완작업을 펴고 있다.
어쨌든 교과서 전면개편을 앞두고 출판업계는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오만진·이두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