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영하의 교향시 「아이슬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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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스코틀랜드」의 북쪽인 「하일랜드」를 돌아다녀 본 뒤 저녁에 기항지 「얼라풀」에 다시 돌아와서는 「오이로파」를 타고 이번에는 북서쪽의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새삼스럽게도 저 유명한 「이벨」의 교향시 『기항지』의 그 아름다운 음악의 「무드」가 느껴지도록 여러 곳에 기항하는 바다의 여행이 매우 멋있어 보인다.
여객선은 「노르웨이」해를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바다는 설레어 파도가 꽤 높았다. 지난날 이 바다에서 배질을 알 수 있다면 일류 「마도로스」라고 불렸다는데 이 바다는 영국과 「노르웨이」의 무대로서 널리 알려졌었다. 북극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밤이건만 초저녁의 여름처럼 하늘은 희미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를 밤낮을 꼬박 항해하여 아침에 목적지에 가까워졌는지 저 멀리 수평선에 내려앉은 구름 속으로 「아이슬란드」의 빙하들이 뿌옇게 보이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유럽」빙하의 왕좌격이라 할 「바트나요퀴틀」빙하였다. 얼마 뒤엔 「미르달시요퀴틀」빙하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낭떠러지로 된 해안선까지 빙하가 길게 뻗어 있는 것은 장관이었다.
잿빛 구름과 흰빛 빙하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이것은 단조로운 「콘트라스트」지만 「휘슬러」의 『백색의 교향곡』이란 「타이틀」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아이슬란드」의 빙하 광경은 고스란히 우주화라고 할 수 있는 「스케일」큰 그림이었다.
그 옛날 누군가가 이 섬을 「아이슬란드」(빙도)」라고 지은 것도 하얀 빙하로 덮인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슬란드」 본도에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진 곳에는 「베스트마나에야르」제도가 보였다. 이 제도의 이름은 「서국인의 섬」이란 뜻인데 「유럽」사람들이 이렇게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옛날 고기잡이를 하러 왔던 그들은 「아이슬란드」본도 보다도 이 제도로 먼저 옮아 살았다고 한다. 이 제도는 거무튀튀한 현무암과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화산도 들이다.
이 제도 중의 「서트시」섬은 1963년 해저 화산의 폭발로 생긴 섬이며 가장 큰 「하이마에이」섬은 1973년에 폭발되었다고 하는데 수증기로 덮여 있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서트시」섬은 순전히 불타는 용암이 터져 나와 새로 생긴 섬인 만큼 흡사 창조된 직후의 지구를 축소시킨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하이마에이」섬은 불과 3년전에 폭발하여 흘러내린 시꺼먼 용암이 그전 지표면에 덮여 있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이날 따라 보슬비가 내리고 있어 날이 음산한데다가 거무튀튀한 「하이마에이」섬은 폭발할 때 흘러내린 용암류에서 여전히 수증기 줄기가 일고 있어서 흡사 마술의 나라처럼 느껴졌다.
이렇듯 괴기한 상념에 잠기고 있을 때 여객선은 이 섬 앞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이 해안은 가파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는데 갈매기 비슷한 해조가 얼마나 많이 사는지 울음소리들이 고스란히 바다의 「엘레지」를 위한 「코로스」를 이루고 있으며 절벽 바위에는 온통 새똥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의 환각 때문일까. 이 섬이 애초부터 「마의 섬」으로 보였기 때문인지 이 낭떠러지를 중심으로 날고 앉고 하며 연방 울어대는 해조들은 어떤 낭만이 아니라 흡사 「히치코크」감독의 「드릴러」명화 『새』에 나오는 마의 새들처럼 사람들에게 달려들지나 않을까 하는 매우 무시무시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이 가파른 벼랑을 해조들이 안전한 보금자리로 삼고 둥우리를 지어 알을 까지만 이곳 사람들은 용케도 이 아슬아슬한 절벽에다 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리면서, 새알을 거두어가고 있었다.
해조들은 자기 자식인 알을 빼앗기는 것이 가슴 아픈지 연방 까욱 까욱 울면서 그 둘레들을 돌고 있었다. 어떤 해조들은 알을 앗아가는 사람들에게 달려들 것 같기도 했다. 이 해조 알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이른바 「자연적인 양계」가 되는 셈이지만 새의 낙원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여행자의 눈에는 아쉽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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