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허허벌판 자라섬 재즈축제 명소로 거듭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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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
인재진 지음
마음의 숲, 288쪽
1만2000원

창의적인 사람의 무기는 상상력이 아니라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용기다. 누구나 꿈을 꿀 순 있다. 하지만 모두가 실패를 감수하고 행하진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인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허허벌판 황무지에 국내 처음으로 재즈 페스티벌을 이식했고, 10년째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첫째, 용기있는 한 남자의 경험에 빚진 성장담이자 둘째, 한국에서 음악 페스티벌 기획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입문서다.

 이 책을 성장담으로 읽는다면 저자의 배포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공연 기획이란 ‘지도 없는 길’을 선택한다. 당연히 실패가 이어졌고 7년간 ‘찌글찌글한’ 신용불량자로 살았다. 빚더미에 무너질 법도 한데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비극을 의식하지 않는다. 되려 채권추심원과 호형호제하는 여유와 기지를 발휘한다. 그는 “사실 나는 큰일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17쪽) “예측 가능한 미래를 더 못 견뎌했다”(115쪽)라고 고백한다. 그러니 그를 키운 건 팔할이 배포이자 모험심이다.

 중요한 건 이 실패의 기억이 자라섬 페스티벌을 낳았다는 사실. 두 번째 독법의 포인트는 그가 사수도 없이 어떻게 이런 대형 페스티벌을 만들어냈는가다. 뮤지션 섭외부터 협찬사와의 관계 설정, 각종 편의시설 구축,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법까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 배운 노하우를 털어놓는다. 특히 “주먹구구도 시스템”이란 말이 인상적이다. 페스티벌처럼 현장성이 강한 일은 사고가 유연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실 세 번째 독법도 있다. 이 책은 즉흥적이므로 매순간 번뜩이는 장르, 재즈에 대한 내밀한 사랑 고백이다. 그리고 그 애정이 어떻게 창의력의 원동력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도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우리의 한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한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참, 저자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남편이다.

페스티벌 기획의 ABC

첫째 Sitting(앉아있는 것). 앉아서 보거나 들을 만한 콘텐트가 명확해야 한다. 둘째 Eating(먹거리). 축제는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탈피해 먹고 마시며 즐겁게 놀자는 것이다. 공연예술 축제라도 일정 수준의 먹거리를 갖춰야 한다. 셋째 Shitting (화장실). 볼 일을 보기 위해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면 다시는 그 축제에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넷째 Continuity (연속성). 일회성 축제가 아니라면 다음해 축제 일정을 알려야 한다. 예측 가능해야 관객들이 미리 계획을 세운다. 다섯째 Permanency of Organization(조직의 항구성). 운영 조직이 늘 축제 곁에 있어야 한다. 노하우가 전수되지 않으면 아무리 연속성이 있어도 절대 발전할 수 없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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