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 칼럼] 미국 세제 개혁 더 미뤄선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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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21면

세금은 늘 달갑지 않다. 그러나 소득세를 신고해야 하는 4월 15일이 가까워 올 때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기억할 게 있다. 미국의 세제는 소득 불평등의 부작용을 완화시켜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든 불행하게도 지난해 소득이 큰 폭으로 줄었다면 세금 부담도 크게 준다. 그런 면에서 미국 조세제도는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을 방지하는 보험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도 조세제도는 비슷한 기능을 한다.

현행 조세제도가 없었더라면 소득 불평등이 훨씬 악화됐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조세제도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할 경우 조세제도가 효과적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금이야말로 세제를 개혁해야 할 때다. 필자는 2003년 출간한 『새로운 금융질서』란 책에서 이런 주장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불평등이 빠르게 악화됐다는 객관적 증거가 나왔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머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주의』라는 기념비적인 저서에서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중국·인도·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최고 소득자가 나머지 계층보다 훨씬 많이 벌면서 지난 25년 동안 빈부 격차가 빠르게 확대돼 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풍부한 사례 연구만 보면 그의 책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해결책 제시엔 미흡하다.

피케티는 자본에 대해 ‘세계세(global tax)’를 부과하자고 주장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유토피아적인 아이디어라며 반신반의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가까운 시일 내 이런 세금에 합의할 거라곤 상상하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그는 소득세의 최고 세율이나 상속세를 올리자고 제안하면서도 이 같은 일이 “실현 가능할 거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고 봤다. 과거에도 부유층에 대한 과감한 증세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이란 전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뿐이다. 부자 증세를 위해 대규모 전쟁을 새로 벌일 순 없는 노릇이다. 대신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은 있다. 조세제도를 당장 개혁하는 일이다. 세금을 소득 불평등 정도에 연동시켜야 한다. 예컨대 소득 불평등도가 올라가면 최고 소득자에 대한 한계 세율이 자동으로 오르게 하는 것이다. 예일대 이언 아이레스와 UC버클리의 아론 에들린은 2011년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비슷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지금 세제 개혁을 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할 때까지 기다리면 자신들의 부가 정당하다고 믿으며 이를 지키기 위한 수단까지 갖춘 거부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2006년 필자가 어번브루킹스 조세정책센터의 리어나도 버먼과 제프리 로핼리 등과 함께 낸 논문에서 우리는 일종의 소득 불평등 연동 조세제도를 연구한 바 있다(당시 우리는 이를 ‘밀물 조세(rising tide tax)제도’라 칭했다). 그러나 이론적 연구 과정에서 우리는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자면 최고 세율이 75%에 달해야 했기 때문인데, 이는 정치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첫 임기 때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곧 폐기한 바 있다. 그 정도로 높은 세율은 경기에 악영향을 줬을 것이고 광범위한 탈세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엔 앞으로 불평등이 악화할 때마다 이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경감시켜 줄 방안이 있다. 지난달 버먼은 미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한 소득 불평등 연동 조세제도를 제안했다. 물가상승률과 소득 불평등도를 함께 소득세율에 연동시키자는 게 그의 아이디어다. 지금은 물가가 오를 때 실질 세금 부담이 늘지 않도록 물가상승률만큼 소득세 과표 구간을 일률적으로 올려준다. 그런데 여기에 소득 불평도를 반영해 고소득층에겐 부담을 더 지우고 저소득층에겐 덜 지우는 방식을 가미하자는 것이다. 그의 제안은 우리의 조세제도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소득 불평등도의 악화로 인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훌륭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International New York Times 4월 12일자 10면 'It's time to tweak tax system' 기사를 번역한 글입니다.



정리=정경민 기자 jkm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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