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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벚꽃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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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대학을 졸업한 후 7년 동안 진해에서 살았다. 진해 사람들의 관심사는 역시 4월 초에 열리는 군항제다. 실은 군항제보다 벚꽃장이 훨씬 친근하게 들린다. 벚꽃장은 군항제가 열리는 공간과 시간을 가리키는 한편 인산인해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진해에서는 사람과 차들로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을 난리 벚꽃장이라 말한다. 벚꽃장 기간 100만이 넘는 인파와 차량이 좁은 시가지에 몰리기 때문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이 난리 속에 난장까지 선다. 갖은 물건을 거래하는 장터들이 벚꽃장의 한 풍경을 장식한다. 하기는 축제와 시장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벚꽃장도 하나의 장터를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나는 진해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사업장 소식을 전하는 주재기자 노릇을 했다. 4월의 중요한 임무는 진해 벚꽃장의 풍경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 본사에 보내는 일이었다. 경화역이나 중원 로터리의 흐드러진 벚꽃에 앵글을 맞추다 보면 곧 연분홍 꽃물결에 넋이 빠진다. 이따금 시샘한 봄바람이 휘익 불어오고 벚나무들은 제 몸을 흔들다 후르르 눈꽃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벚꽃에 취하면 술이 생각나고, 벚꽃장은 술 권하는 세상을 만든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속천항 횟집에서 갓 잡아 올린 도다리 세꼬시에 소주를 먹었고, 흥청흥청 걸어오다 동네 수퍼의 평상에 앉아 탁주를 마셔댔다. 달빛이 은근히 비추는 야밤의 벚꽃은 더욱 진하고 화려해 황홀감이 더해 갔다. 어느새 내 의식은 육신에서 벗어나 무릉도원의 한데를 헤맸다. 이렇게 맘대로 벚꽃장을 누린 대가는 혹독해 다음 날 취기 속 출근의 고통은 그야말로 잔인했다.

 늦깎이 대학원생이 된 이후에도 진해를 떠나지 못했다. 그 시절,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을 읽고 진해 벚꽃에 대해 약간의 실망감이 생겨났다. 잘 알려졌듯이 이 책은 꽃을 좋아하는 심미안적 정신과 칼을 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호전적 행동을 겸비한 일본인 문화를 해부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진해에 군사 항구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시가지 곳곳에 벚나무를 심어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응당 일본이 벌을 받아야 할 뿐 벚꽃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한동안 진해에서 벚꽃이 제국주의 일본을 상징한다 하여 벚나무를 베는 식물 민족주의가 횡행했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이 밝혀지자 벚꽃에 대한 무력 쇼는 멈췄지만 이런 추세 역시 식물과 민족을 동일시하는, 감정적 민족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세월은 흘러 나는 진해 인근의 신도시로 이사를 왔다. 여기에서도 4월이면 벚꽃이 향연을 펼쳤다. 벚나무가 가로수로 심기에 좋은 수목인 까닭도 있지만 모방 심리도 크게 작동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거리마다 벚나무를 심고, 4월이면 진해를 따라 벚꽃 축제를 벌이는 지역이 늘어났다. 봄꽃을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벚꽃 축제는 흥행보증수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철마다 벚꽃의 개화시기를 두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닐까.

 우리 딸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였던 것 같다. 아파트 주변의 벚꽃 거리를 딸애와 손잡고 걸었는데, 이상 기온 탓인지 목련·개나리·벚꽃이 함께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꽃향기에 취해 우습게도 어린아이에게 사람은 꽃이라며 설을 풀었다. 우리 딸이 이른 봄이라면 아빠는 완연한 가을이고. 사람이 꽃이라면 우리 딸은 개나리야. 노랗게 손을 내민 개나리를 멋쩍게 바라본 딸이 이렇게 물었다. 그럼 아빠는 무슨 꽃이야. 글쎄 아빠는 꽃보다는 낙엽 하면서 어물쩍거렸다. 사람이 꽃이라며 아빠는 뭐야. 딸애가 다시 물었지만 코스모스나 국화 같은 가을꽃을 말하기에는 생뚱맞은 4월이었다. 그날 화들짝 놀란 목련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은 제각각 특유의 빛깔, 향기, 아름다움을 가지기 때문에 꽃이다. 제 색깔을 가진 꽃들이 모여 우리 국토는 진정 꽃밭이 된다. 꽃밭에는 채송화·봉숭아·맨드라미·나팔꽃 외에도 이름 모를 들꽃까지 피어야 진정한 봄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진해 벚꽃은 아름답게 피고 지지만 우리 국토 전체가 벚꽃장이 될 필요는 없다.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