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 11세 일성이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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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짜증 부리는 거 다 받아주시고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태어나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2년 전 어버이날, 전남 순천 SOS어린이마을 보육교사 김명순(54)씨는 조일성(11·가명)군이 쓴 편지를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카네이션과 함께 아이가 건넨 편지를 들고 김씨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는 “‘죄송하다’고 쓴 아이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며 “그럴 때면 아이를 불러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무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어버이날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할 얘기를 마음에 담아뒀다. “애들아, 여기 있는 게 왜 너희 잘못이라고 생각해. 다 어른들 잘못이지. 너희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일성군이 쓴 편지엔 보육원 아이들이 흔히 겪는 자책감이 녹아 있다. 성인이 돼 보육원을 퇴소하는 아이들도 이런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게 정말 행복한 기억들 만들어 주셨는데… 원장님은 얼마나 힘드셨나요. 그 짐 한 번 덜어주지 못한 점 너무너무 후회스러워요. 정말 어리석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지난 2월 관악구 상록보육원을 퇴소한 박주연(19·가명)양이 부청하(71) 원장에게 남긴 편지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보육원 아이들의 경제적 자립과 함께 정신적 자립을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릴 때 큰 상처를 입은 데다 사회의 편견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동명아동복지센터 김연희 사무국장은 “말을 잘 못하는 3~4살 정도의 아이도 부모들이 버린 것을 안다”며 “정신적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자책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본지 심층인터뷰에 응한 임형오(26·가명)씨는 “취업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나 홀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아동복지협회는 보육원 아동 500명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1만5000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 SOS어린이마을 정상은 심리치료사는 “보육원 아이들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우울증 등을 함께 앓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등 심리적인 자립을 먼저 이뤄내야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기헌·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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