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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 논문 없어도 … 기업 인재, 공대 교수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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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하고 공과대학 혁신 방안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공학도가 점점 더 깊이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은 역시 기본기가 탄탄해야 된다” 고 말했다. 왼쪽부터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 박성현 과학기술자문위원, 박 대통령, 최윤정 부산대 공대학생. [청와대사진기자단]

“교수들이 ‘hobby theory(취미연구, 실용화 가능성보다는 개인의 관심사에 따른 연구)’에만 몰두해요. 상용 가능한 기술을 연구하기보다 자기 분야에만 집중해 논문 실적을 높이는 거죠.”

 서울대 박희재(기계공학) 교수는 명함이 두 가지다. 하나는 공대 교수, 또 하나는 벤처기업 대표다. 1998년 대학원생 4명과 ‘학교기업’을 세워 연매출 1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산업기술 발전에 앞장서야 할 공대 교수들조차 산학협력엔 뒷전”이라며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논문인용색인)급 논문에만 신경 쓰다 보니 대학 연구가 산업기술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공대 교수는 “대학이 논문 실적에만 매달려 기계공학과 교수를 채용할 때도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보다 논문 많이 쓰는 사람을 임용한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공대 교육 혁신에 칼을 빼들었다. 산업과 기술 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실용 연구는 적고 논문 쓰기 위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관행을 개혁하기 위해서다. 학계와 산업계 대표 등으로 구성된 공과대학혁신위원회(위원장 이준식 서울대 연구부총장, 이하 혁신위)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실용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는 공대 교육 혁신안을 보고했다. 혁신안은 미래창조과학부·교육부·산업부가 함께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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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공대 교육이 산업 현장과 괴리된 이론 중심으로 가면서 기업이 필요한 산업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실용교육과 연구를 강화해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개발 결과가 실험실에 머물지 않고 사업화와 신시장 개척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보고에서 “공대 교육이 현실과 괴리된 원인은 재정지원사업과 교수평가가 SCI 논문 중심의 양적 평가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들은 그동안 논문을 많이 써야 좋은 평가를 받고 연구비도 탈 수 있어 자연히 논문 실적이 좋은 교수를 뽑는 데 열을 올렸다. 그 탓에 실용교육과 산학협력은 소홀해져 이론 연구에만 몰두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실제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2012년)에 따르면 한국의 논문·특허 순위는 세계 3위였지만 기술 사업화·표준화 순위는 43위에 불과했다. 대학의 R&D 투자 대비 기술료수익률(2012년)도 한국(1.05%)은 미국(3.38%)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혁신위는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향후 정부 재정지원사업 선정 시 연구성과뿐 아니라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한 성과, 기술료 수입, 특허 숫자 등을 고려하기로 했다. 교수를 뽑을 때도 SCI 논문 없이 기업에서 일한 경력만 있어도 채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다. 교수 평가를 할 때는 교수별 장점에 따라 교육·학술연구·산학협력 활동을 적정 비율로 선택할 수 있도록 평가모형을 세분화하기로 했다.

 공대생들도 전공 관련 강의를 더욱 많이 들어야 한다. 전공 이수 기준을 대폭 강화해 공학교육인증제(기초과목 30학점, 전공주제 54학점 이상) 수준으로 올리고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을 교육부 고시로 만들어 ‘현장역량’을 높인다.

 하지만 이 같은 혁신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의 한 공대 교수는 “지역마다 산학 인프라 편차가 매우 크다”며 “이를 무시하고 갑자기 산합혁력을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양극화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대 교수는 “대학은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하는 곳인데 자칫 특정 분야의 직업훈련만 시키는 쪽으로 흘러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용호·김한별·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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