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논문만 써내는 공학 교육엔 미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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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공과대학 혁신방안은 우리 공과대를 ‘학술지 논문만 써내는 공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4년제 공과대 졸업생은 연간 6만9000여 명으로 인구 수에 대비해 선진국 수준을 넘어서지만 우리 공대는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논문만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대를 혁신해야 한다는 위원회의 현실 인식은 타당하다.

 우리 공대가 처한 연구 부문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이 해마다 쏟아내는 연구 성과가 대학 담을 넘어 산업체·국책연구소 등과 공유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학 교수들의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만 따지는 정부와 대학의 평가 관행도 한몫한 게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이 연구를 위한 연구, 정부 돈을 타내기 위한 내실 없는 연구에 쏟아부어졌다. 2012년 기준 4년제 대학의 연구개발 투자액 대비 기술료 수익률은 1.0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미국 전체 대학 평균(3.38%)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 대학의 연구 성과가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번에 공대 재정 지원 사업과 교수 평가를 실용연구 중심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산업체 현장 전문가가 대학 사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도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논문 수와 같은 정량평가만 없애면 공학 교육이 혁신된다고 보긴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공대의 학부 교육, 전공 교육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인문학을 바탕으로 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는 통섭 교육이 오히려 공학 교육을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선진국 대학들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교양 강좌를 맡겨 신입생 교육을 시키거나 통섭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현실은 참고할 만하다. 공학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은 산업계와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창출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 정부와 학계·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개선 방안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