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토양 딛고 꿋꿋이 꽃 피우는 모습에 경이로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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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들이 광덕산 이마당약수터 인근에 핀 현호색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야사사’.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2010년 결성됐다. 전국 곳곳에 있는 야생화 명소를 찾아다닌다. 각자 얻은 야생화 정보를 페이스북에 올린다. 야사사 회원들이 지난 일요일 아산에 있는 광덕산에서 만났다. 올해 첫 정기모임이다. 야생화에 푹 빠진 이유가 궁금해 따라갔다.

지난 6일 오전 9시. 아산 외암리민속마을 입구에 100여 명이 모였다. 사이클 선수 복장을 한 사람, 등산복을 차려 입은 사람, 청바지 차림으로 나온 사람. 차림새는 각양각색이지만 하나같이 목에 명찰을 걸었다. 명찰에는 이름과 그들이 사는 지역이 씌어 있다. 충남은 물론 서울·경기·전북·경남 등 전국 각지에서 왔다.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코스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 답사 코스는 외암리민속마을 입구에서 출발해 광덕산 이마당약수터를 지나 장군바위~어둔골계곡~멱시를 거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최성호 야사사 회장이 회원들을 한데 모아 야생화가 만발한 이날의 코스를 설명했다. “이번 광덕산 코스에서는 현호색·만주바람꽃·꿩의바람꽃·미치광이풀 같은 10여 종의 야생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최 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원들은 신이 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했다.

‘야사사’ 회원인 이상문·권석우·김영애·임재룡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그들이 야생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이유는

첫 코스인 광덕산 이마당약수터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가는 길목에도 진달래·복수초 같은 야생화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야생화의 매력에 빠져들면서도 만지거나 꺾는 사람은 없다. 이마당약수터 인근에 도착하자 연보라색 야생화인 현호색 무리가 반겼다. 현호색을 본 회원들은 저마다 유심히 관찰하며 사진 촬영에 몰두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야생화 주변에 있는 낙엽이나 풀을 치워서는 안 됩니다. 야생화에게 낙엽은 이불이고 풀은 밥인 셈이죠.” 최 회장은 현호색을 감상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대학생 때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졌다. 개발로 훼손되는 환경이 안타까워 보호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야생화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야생화에 홀린 계기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야생화를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정화됩니다. 이제 봄이 됐으니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만나러 전국 각지로 돌아다녀야죠. 회원들에게 올바른 식물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최 회장은 아름다운 야생화를 계속 감상하려면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산에서 노인복지사업을 하고 있는 정택근 회원. 정씨 역시 오랫동안 야생화에 관심을 뒀지만 야생화 매력에 빠진 이유는 최 회장과 다르다. 그는 15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생각을 정리할 겸 여행을 다니다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사업 실패로 낙심하고 있을 때 카메라를 들고 홀로 여행을 떠났어요. 그때 처음 야생화를 봤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더군요. 아름답게 핀 야생화를 보고 어떤 조건에서든 꿋꿋이 버틸 수 있다면 분명 좋은 결실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씨는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 만큼 열성적이다.

이들이 만난 현호색·만주바람꽃·꿩의바람꽃

야사사 회원들은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자유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1시간 넘게 혼자 자유롭게 야생화를 관찰하면서 카메라에 담는다. 광덕산에서 이들이 본 야생화는 현호색·꿩의바람꽃·만주바람꽃·복수초·흰괭이눈·중의무릇·개감수·피나물·미치광이풀·제비꽃 등 10여 종에 이른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총 여덟 시간 동안 네 코스를 돌며 평소 주변에서 보기 힘든 야생화를 맘껏 감상했다.

 아산 지역언론사에서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는 회원 임재룡씨는 “야사사 회원들이 우리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광덕산까지 방문해 야생화를 즐기고 가니 더없이 뿌듯하다”며 “야생화를 좋아하는 취향도 저마다 다른데 야생화를 훼손하지 않고 눈과 마음으로 즐겨줘 고맙다”고 말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아산지부 사무국장인 회원 이상문씨는 “사진 찍는 게 직업이지만 야사사에 가입한 이유는 훌륭한 회원들과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운 마음씨에 뛰어난 친화력을 갖고 있어 쉽게 친해진다. 함께 다닐 때마다 즐겁다”고 만족해 했다.

글=조영민 기자, 김진숙 객원기자 , 사진=진수학 프리랜서, 정택근 야사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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