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교수의 하루-재임재제 시행을 계기로 본 그 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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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S대학 K교수(60)는 매일 아침 5시가 되면 일어나 담배를 피워 물고 정원으로 나간다.
뜰은 15평 정도의 아담한 정원.
30분 동안 정원손질을 끝낸 K교수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긴다.
3시간 강의를 위한 강의록을 작성하기 위해서다.
8평 가량의 마루방에 사면벽이 참고서적과 각종 사전류·연구논문집 등 1만2천여 권으로 둘러 싸여있다.
『교수의 생명은 독특한 강의에 있다』면서 『강의는 예술이며 강의록은 교수의 참작』이라고 강조한다. K교수는 남달리 강의록 준비에 하루 3시간 이상 정열을 쏟는다.
「즐거운 장례식」-. 몇해전 모 대학축제행사 때 벌어졌던 가장 행렬의 한장면. 손때묻은「노트」한 권으로 5, 6년 동안 똑같은 강의를 해온 교수들의 강의록을 불사른 학생들의 풍자극이었다.
K교수의 뇌리에는 이 광경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상오 9시, 계란 2개·우유 1「컵」·사과 1개·보리밥 1공기로 아침 식사를 끝낸 K교수는 검정「백」에 강의록과 도시락, 진행 중인 연구자료 등을 넣고 정릉동 집을 나선다.
「스쿨·버스」에 몸을 실은 K교수는 조간신문을 펼쳐든다.
강의실에 들어선 K교수는 갈수록 멀어져 가는 듯한 학생과의 거리감 때문에 잠시 명상에 잠긴다.
생기 없는 표정으로 강의만을 「노트」하는 학생들의 수강분위기를 고쳐야겠다고 다짐한다.
K교수는 자유의 전당 속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진리의 창조야말로 훌륭한 「아카데미즘」 의 학풍이라고 믿는다.
K교수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명 강의로 이름난 K교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1백50석을 채우고도 1백여명이 뒷줄에 서서 기다릴 정도.
『뒷줄에 앉아 졸고 있는 학생!』
「카뮈」전집을 읽다 밤을 새운 P군은 『옛』하고 일어선다. 『인간회복의 뜻을 설명해봐.』 K교수의 물음에 P군은 머리를 긁적일 뿐. 강의실은 웃음바다로 변한다.
본관 2층 동편에 마련된 교수휴게실. 강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K교수의 백발머리 위로 「파이프」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열띤 강의 후에 찾아드는 한 가닥 외로움이 K교수의 가슴에 저며든다. 학문의 심도가 깊으면 깊을수록 정신적인 반려자가 줄어들어 고독을 느끼기 마련이라는 것.
어느 직종보다 개성이 강한 교수들은 폐쇄적인 사회에 적응하다 보니 각양각색의 괴벽이 생겼다.
1년 내내 검정색 「싱글」만 입고 다녀 「멋장이」로 통하는 G교수, 줄담배를 피워대며 강의하는 「체인·스모커」A교수, 남녀관계에 모든 것을 비유하는 「로맨스·파파」등 별칭도 가지가지.
일주일에 강의를 20여 시간 맡은 강의파 교수가 있는가 하면 「세미나」만 쫓아다니는 「세미나」교수가 있다.
또 일생을 통해 글 한 줄을 활자화하지 않은 옹고집도 있다.
K교수의 별명은 「코피줘-」.하 루에 「코피」를 10잔 이상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해서 학생들이 붙여준 것.
연구실에 들어선 K교수는 창가에 놓인 난초화분에 물을 주고 「코피」를 손수 끓여 마신 뒤 책 더미에 파묻힌다.
6월말까지 완료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비롯, 잡지사원고 정리·교재집필 등 할 일이 산적해있다.
이따금 학생들이 찾아와 인생·전공·병역·이성문제에 얽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낮 12시 점심시간이다. K교수는 부인이 손수 만들어준 도시락을 펼쳐놓고 식사를 한다.
교수식당이 너무 거리가 멀고 비좁아 3개월 전부터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다는 것. 낮 12시50분.
『B급 비상이요!」대학사무실직원들이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리며 비상훈련을 알린다.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부터 실시 된 교수들의 거점 배치훈련.
2시부터 4시까지는 타교 출강시간. 2시간 강의료 3천2백60원을 받아 왕복 「택시」비를 빼고 나면 2천여원. 타교출강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보다 인맥을 넓히고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
하오 6시 퇴근시간. 「스쿨·버스」편으로 종로2가에 내린 K교수는 Y다방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분담지도학생 15명과 1개월에 한번씩 갖는 회식시간. 알맹이 없는 대화를 끝내고 착잡한 마음을 달래보려 인근의 S술집으로 향한다.
맥주 3병에 얼큰해진 K교수는 밤 10시쯤 귀가, 5살 난 손녀의 재롱을 뒤로하고 서재로 들어선다. <김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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