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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선거 무공천, 진퇴양난 안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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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외치는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의 신세가 딱하게 됐다. 기초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기호 1번’을 공천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기호 2번’ 공천을 포기한다는 건 일종의 정치적 자해(自害) 행위다. ‘기호 1번’의 브랜드 파워 앞에 무소속으로 내몰린 새정치연합 출신 후보들(단일화도 쉽지 않다!)이 궤멸 위기에 처할 것이란 점은 너무나 뻔하다. 그런데 정작 이 자해극을 통해 안 대표가 뭘 얻을 수 있을지는 애매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천 폐지 공약을 저버렸지만 나는 지켰다는 명분 정도? 하지만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민주당과 손잡는 바람에 그 자신도 말 바꾸기 비판에 직면해 있는 터에 남 보고 약속 안 지켰다고 몰아세워 얻을 수 있는 명분이 얼마나 대단할까.

 그렇다고 안 대표가 이제 와서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하기도 어렵다. 그가 민주당과의 합당 명분을 ‘기초선거 공천폐지’로 내걸었으니 무공천에서 후퇴하는 건 신당의 존재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안이다. 기자는 이 문제가 뜨거워지기 전부터 ‘기초선거 무공천=정치개혁’이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주장했다(2013년 7월 31일자 30면 ‘정당공천제 폐지 명분은 좋아도’). 기초단체장·기초의원 후보들이 모조리 무소속이면 유권자들은 뭘 보고 투표하란 말인가. 사탕발림으로 도배질돼 있는 선거공보만 훑어보고 후보를 고르는 게 정치개혁인가. 그러다 보면 재력과 조직을 갖춘 지방 토호나 그런 토호들이 미는 후보들만 판치지 않을까. 특히 정당 공천이 없어지면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는 현직 단체장·의원이 정치 신인보다 훨씬 유리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은 기득권의 폐지가 아니라 기득권의 재배치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기초선거 무공천은 대선 때 기초단체장·기초의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든 졸속 공약이었다고 본다. 정치학계에서도 비판이 많다. 진보진영인 정의당도 반대한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큰, 논란 많은 ‘선거의 룰’에 불과하다. 선악의 잣대로 판단할 이슈가 아닐뿐더러 합당 명분으로도 함량 미달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야당이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할 권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야당은 따끔하게 혼을 낸 뒤 국면 전환을 했어야 하는데 계속 대통령 때리기에 집착하다 보니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따지고 보면 안 대표가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해 오래전부터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는 지난해 8월만 해도 기초단체장 공천 폐지에 대해 신중론을 폈었다. 그랬던 그가 요즘 갑자기 이 문제가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 양 떠들고 나오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새정치연합에서도 “여당이 공천하면 우리도 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점점 더 안 대표를 압박할 전망이다. 진퇴양난인 안 대표가 이 곤경을 어떻게 헤쳐나올지 궁금하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