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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판과 향피 … 그 영원한 숨바꼭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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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훈범
국제부장

향판(鄕判)과 향피(鄕避)는 영원한 숨바꼭질 파트너다. 법조계뿐 아니라 모든 권력기관이 그렇다. 한곳에 오래 두자니 토착 이권에 물들기 쉽고, 이곳저곳 돌리자니 알 만하면 짐을 싸게 돼 효율성이 떨어진다. 황금을 돌로 아는 철인(哲人) 향판이 나와 주면 좋으련만, 인간사가 어디 그런가. 그래서 어느 하나를 시행하다 문제가 불거지면 다른 쪽이 다시 술래가 된다.

 어제오늘 그런 게 아니다. 고려시대에 이미 상피(相避)제도가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많은 곳에 벼슬을 내리지 않고, 지인과 관련된 송사(訟事)나 시험감독 따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원칙이었다. 『경국대전』에도 명시돼 조선시대 전반을 규정한 인사제도다.

 그렇다고 옛날엔 잘했는데 요즘은 왜 이 모양이냐고 개탄하는 건 섣부르다. 조선 역사에 상피란 말이 많이 등장하는 건 그만큼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한 까닭이다.

 세종대왕의 지적이 이렇다. “상피하는 법을 세워 간섭은 죄다 회피하면서 벼슬을 제수하는 건 피하지 아니하니 진실로 타당하지 못하다.”(『세종실록』 1432년 3월 25일) 가기 싫은 부임지를 회피하거나 귀찮은 송사에 관여하는 걸 꺼릴 때는 상피 운운하면서 좋은 관직을 내리면 상피고 뭐고 날름 받아먹는다는 질책이다.

 그런 폐해가 200년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는다. 광해군 때 이조에서 올린 상주를 보자. “근래 관리들이 혹 힘든 업무를 싫어하거나 혹 척박한 곳을 싫어해 온갖 꾀로 교체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상피한다는 핑계를 대거나 해서 (…) 외관(外官)은 해마다 바뀌는 폐단이 있고, 경관(京官)은 다른 이에게 가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광해군일기』 1621년 8월 29일)

 과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향판과 향피가 인간사에서 결코 사라질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탈이 생길 때마다 ‘제도 개선’ 얘기부터 나온다. 덧없는 술래잡기가 계속되는 이유다.

 숨바꼭질의 규칙은 간단하다.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아내면 그가 다음 술래가 된다. 그 규칙을 바꾼다고 놀이가 더 재미있어지겠나. 하지만 술래가 누구는 예쁘다고 못 본 체하거나, 들킨 사람이 아니라고 우기면 놀이는 깨지고 만다.

 결국 제도에 앞서 사람인 거다. 규칙을 바꾸는 것보다 규칙을 위반한 사람에 대한 제재가 추상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법적으론 문제가 없거나 위반의 기준이 애매할 수도 있을 터다. 『경국대전』의 기초가 된 『조선경국전』을 쓴 정도전의 말로써 그 기준을 삼을 수 있겠다. “백성은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어리석지만 지모로 속일 수 없다. 마음을 얻으면 따르고 얻지 못하면 떠나니, 떠나고 따르는 사이에 털끝도 끼어들지 못한다.”

글=이훈범 국제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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