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웃고 피해자는 울고 … 이게 뭡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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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나뿐인 아들이 필리핀에 배낭여행을 떠났다 납치됐다. 국제전화로 돈을 요구한 범인은 끝내 아들을 살해했다. 가해자는 지난해 국내로 강제 송환됐지만, 어머니 고금례(58)씨는 사고 이후 3년이 흐르도록 아들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암매장 당한 장소에 다른 건물이 지어져 시신을 꺼내려면 1억원 가까운 돈이 필요했다. 외교부에 하소연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그 사이 남편은 자살을 택했다.

 범죄 피해자 가족을 돕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피해자지원협회는 이같은 현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 15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살인피해자 추모관’을 설립했다. 온라인으로 추모관(www.kmvm.org)을 마련해 영정 사진을 공개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달았다. 사람들이 고인의 모습과 사연을 보고 댓글을 달아 추모할 수 있도록 했다. 협회는 또 서울과 경기, 울산 등 전국 17개 지역에 추모위원회를 만들어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심리치료를 하고, 사건 해결을 돕기로 했다.

 2011년부터 협회를 운영해 온 이상욱(58·사진) 회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살인 사건이 해마다 1000건 이상 발생하는데 아직 상담 인력과 지원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려신소재 대표이사 명함도 갖고 있는 이 회장은 태양광과 관련된 건축자재 등을 판매하는 기업을 운영한다. 오전에는 서울 중곡동에 위치한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다 오후에는 광장동의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는 “본업이 있어 피해자지원협회 회장직을 언젠가는 그만둬야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협회 일을 시작하면 피해자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골몰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서울 동부지검이 있는 광진구 일대에서 지역일을 돕다 2005년 피해자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성폭행을 당한 한 여중생을 지원하면서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 기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교육받고 나와 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기도 하지만, 피해자는 가족 해체 등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외국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마을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 와 힘이 돼주지만 한국은 그 근처를 얼씬거리지 않는 분위기”라며 “우리 사회가 더욱 열의를 갖고 피해자들을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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