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우썰탄'… 장애 벽 넘어 우리 가슴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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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경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여자핸드볼 대표팀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2007년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민의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다.

 올해 1월, ‘우리는 썰매를 탄다(이하 우썰탄)’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패럴림픽 종목인 아이스슬레지하키 대표팀 선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하지만 우썰탄은 극장에서 볼 수가 없다. 개봉관을 잡지 못해서다.

 우썰탄은 SBS 프로듀서 출신인 김경만(44) 감독이 2년6개월이나 매달려 만든 영화다. 김 감독은 태흥영화사 이효승 전무를 통해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소개받았다. 김 감독은 “스포츠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이템이 되겠구나’ 싶었다. 썰매를 타고 한다는 것도 특이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 포스터. 김경만 감독은 “선수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과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태흥영화사]

처음에는 선수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장애인’ 하면 불쌍하고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이미지로만 다루는 방송이나 영화가 많아서였다. 하지만 틈나는 대로 경기장을 찾는 김 감독을 보며 ‘우리 편’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선수들도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눈물나는 휴먼스토리로 잡았던 주제도 행복한 모습을 그리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선수들은 슬레지하키를 통해 장애의 벽을 넘고, 삶의 활력을 찾고 있었다. 한민수 선수의 두 딸은 아빠의 태극마크를 자랑스러워했고, 다리가 없는 선수들은 “하키를 하는 데는 아예 다리가 없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정승환 선수는 부러진 손가락을 숨기고 경기에 나갔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다친 이종경 선수는 썰매를 타면서 질주의 쾌감을 되찾았다.

김 감독은 “그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행복했나. 저들이 더 행복한 것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가수 김태원씨가 음악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주위의 도움도 이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배경이 된 2012년 고양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대표팀은 소치 패럴림픽 출전권을 얻는 데 실패한다. 당연한 결과였다. 2006년 창단한 강원도청이 유일한 실업팀이며 클럽팀도 4개뿐이라 선수래야 50여 명에 불과하다. 이후 치러진 패럴림픽 예선을 통해 소치행 티켓은 따냈지만 본선에서도 목표로 했던 메달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경기장을 찾아 열렬히 응원한 러시아를 승부샷 끝에 눌러 파란을 일으켰다. 최종 순위는 7위였다.

 선수들은 패럴림픽을 앞두고 체코 전지훈련을 떠나면서 김 감독에게 “우리가 꼭 메달을 따고 오겠다. 그러면 영화도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업영화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 구도 속에서 스포츠 다큐멘터리 영화, 그것도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포기하지 않는다. 전국 어디든 원하는 곳이 있으면 필름을 가지고 가 영화를 보여주며 큰 스크린에서 더 많은 이들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

 우썰탄의 영어 제목은 ‘패럴렐(parallel·나란하다 또는 병렬의)’이다. 김 감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나란히 함께 가야 할 사람이다. 영화가 끝내 개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만은 커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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