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집으로 돌아간다" … 오바마, 푸틴 측근 등 11명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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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크림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의 레닌광장에서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했다는 소식에 친 러시아계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광장 뒤편으로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심페로폴 로이터=뉴스1]

크림반도가 러시아로의 귀속을 선택했다. 서방의 제재도 본격화됐다. ‘신냉전’으로 가는 제빙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다.”

 17일(현지시간) 0시를 갓 넘긴 시각, 크림반도 심페로폴의 레닌광장에서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자치공화국 총리가 외친 말이다. 60년 만에 다시 러시아 국민이 된다는 의미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은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러시아 국가를 불렀다. 폭죽도 터졌다. 전날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있었다. 유권자의 83%가 투표소를 찾았고, 찬성률은 압도적인 96.8%였다. 광범한 자주권을 갖는 내용의 1992년 크림헌법 복원과 우크라이나 잔류를 바라는 주민은 극소수에 그쳤다.

 크림 의회는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가 크림 귀속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는 문서를 채택했다. 러시아 하원도 즉각 투표 결과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들 귀속안이 무난히 통과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수치는 예상 밖이었다. 특히 투표율은 2012년 총선 때의 두 배였다. 크림반도의 러시아계가 58%임을 감안하면 타민족도 상당수 동조했다는 얘기다.

 크림반도에선 독립선언에 따른 추가 조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의회는 반도 내에 있는 모든 우크라이나 정부 재산과 에너지 기업을 국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앙은행을 설립하고 러시아 루블화를 공용 화폐로 결정했다. 러시아는 조만간 크림반도에 10억 루블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방은 서방대로 예정됐던 제재 시나리오를 밟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측근 블라디슬로프 수르코프 등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에 책임이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인 11명에 대해 여행 금지와 미국 내 자산 동결을 결정했다. 미국 백악관은 제이 카니 대변인 명의로 “이번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고했다. 유럽연합(EU)도 17일 브뤼셀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의에서 크림반도 사태에 관련된 21명에 대한 여행금지·자산동결을 결정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가)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터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는 “이번 관련자들을 몇 년이 걸리더라도 우크라이나와 국제 법정에 세워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아르세이 야체뉵 총리)고 다짐했다. 군대도 소집했다. 이번 주 중 EU와 정치 부문 협력협정도 맺는다. 러시아를 자극할 내용이다.

이제 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푸틴을 빼곤 아무도 모른다”고 썼다.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주민투표가 이뤄지던 16일에도 설득 전화를 한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해결할 길이 아직 남아 있다”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주민의 선택 존중’ 발언으로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 가능성이 큰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그럴 경우 91년 소련 해체 후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영토를 늘린 첫 경우다. 서방이 “러시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전후 국제 안보 질서의 재앙”(뉴욕타임스)으로 판단, 러시아와 서방 간 ‘신냉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하지 않겠다”(4일)고 말한 적도 있는 만큼 막판 유화제스처로 크림반도를 합병까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지아의 남오세티야가 그런 경우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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