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주민투표 위법성 공방, 양측 논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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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러시아와 서방이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크림반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이번 투표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과 러시아계 주민들의 크림반도 장악이 1라운드라면, 이번 주민투표는 2라운드다. 또 향후 러시아의 대응이 푸틴 독트린의 향방을 가름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현재까지 국제 전문가들은 푸틴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로 인해 러시아로서는 나름대로 합법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군사력을 이용한 크림반도 장악이 무력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번 투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민의를 반영한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와 서방의 공방은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적법성 여부에서 출발한다. 푸틴은 이미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또 크림반도 내 러시아계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도 표했다. 러시아는 이 두 가지를 이번 투표의 합법성 근거로 제시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등장한 중앙정부의 명령을 크림자치공화국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게다가 주민들이 안전이 위협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푸틴은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원칙에 이번 투표가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보편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데 방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헌법과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자치정부가 자체 결정을 통해 다른 나라와 통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또 러시아의 연방하원(두마)이 최근 심의에 착수한 ‘외국 영토 병합 간소화에 관한 법안’도 정당성이 없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불법적인 군사력을 활용해 크림반도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을 결정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이번 투표 결과는 향후 크림반도가 독립의 길로 향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번에 결정된 것이 ‘독립’이 아닌 ‘러시아 합병’인 만큼 또 다른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국 등 서방 측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불법 투표라는 떠드는 것만으로 사태의 반전을 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서방으로선 크림반도의 역사적 특수성이 풀기 어려운 난제다. 1954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기기 전까지 러시아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주민의 60%가까이가 러시아계다. 민의를 친서방으로 돌리기도, 이들을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새로 들어선 친서방 과도정부로 인해 “주민들이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러시아의 주장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실제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하진 않았지만, 국제사회는 수단의 다푸르와 보스니아 등 세계 곳곳에서 민족 갈등이 야기한 내전에 따른 대량 학살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서방이 러시아와의 군사적 충돌을 원치 않는 만큼 최대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옵션이 많지 않다”며 “현재로선 푸틴 전략의 방향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루블화 가치 하락 등 경제 안정성이 조금씩 흔들이고 있는 등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국제 전문가들은 푸틴이 자신의 기조를 밀고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한 전문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주창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절대 자신의 신념을 꺾을 인물이 아니다”며 “그의 이런 성향도 이번 사태를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방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이유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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