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의 저주 … 일본 '과학 신데렐라'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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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돌파구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아온 줄기세포 연구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국에 이어 이번엔 일본에서 논문조작 스캔들이 터지면서다. 2006년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Science)’ 논문조작 논란에 이어 두 번째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깊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31·사진) 박사 등 소속 연구원들이 지난 1월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자극촉발만능(STAP)줄기세포 논문을 철회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논문에 실은 사진이 중복으로 사용된 사실 등을 확인했다는 이유다. 제1저자인 오보카타 박사는 논문 발표 후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일본 과학계의 신데렐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하루아침에 ‘일본의 황우석’으로 전락했다.

 줄기세포 연구자들의 잇단 논문 조작에 대해 학계에선 치열한 연구 경쟁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과 ‘세계 최초’ 타이틀에 대한 집착 등을 이유로 꼽는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세계 각국의 줄기세포 논문은 연평균 12.2%씩, 특허는 23%씩 늘었다. “국제적인 연구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 중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정부 ‘줄기세포 기반 신약개발 연구단’ 단장인 연세대 김동욱(의대) 교수는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다른 연구자에게 추월당할까 봐 초조해하는 연구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번에 스캔들이 터진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RIKEN은 2011년 유도만능줄기(iPS)세포로 노벨상을 받은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수팀과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경쟁 상대인 교토대) iPS의 단점을 극복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연구자들은 “유독 줄기세포 분야에서만 스캔들이 이어진다”는 비판에 대해선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른 연구 분야에서도 실험 결과가 재현되지 않거나 조작 사실이 밝혀져 논문이 철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지난해 말 한국인 저자 두 명이 주 저자로 참여한 벼의 면역반응 연구논문이 ‘사이언스’와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저널 ‘플로스원(PLoS ONE)’에 실렸다 실험 결과가 재현되지 않아 철회됐다. 연구자들은 “조작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지만, 더 이상 파문이 번지진 않았다.

 김정범 울산과학기술대(UNIST) 한스쉘러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이에 대해 “줄기세포 연구는 일반인들의 관심이 큰 건강문제와 직결돼 있다 보니 쉽게 주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일부 자동차가 리콜된다고 해당 차종 생산 자체가 중단되는 건 아니지 않나”며 “일부의 스캔들로 줄기세포 연구 자체가 위축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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