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통일준비위원장 직접 맡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제안한 통일준비위원회가 다음 달 꾸려진다. 박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아 통일 전반의 업무를 지휘한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4일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통일부 등 관계 부처 간 충분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거쳐 통일준비위의 구성과 운영 방안을 마련했다”며 “통일준비위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해서 50인 이내의 정부·민간 위원으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정부위원은 기획재정부·외교부·통일부·국방부 장관 등과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관련 정무직 공무원들이다. 민간위원엔 통일 관련 국책연구기관장 등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한다. ‘박근혜 위원장’이 지명하는 부위원장은 정부와 민간에서 1명씩 나온다. 통일준비위는 통일 전략을 짜면서 부처 간 조율을 하는 사실상의 ‘통일 사령탑’이다. 국민 여론을 통합하는 역할도 하게 되는데, 이걸 박 대통령이 전면에서 주도한다는 뜻이 된다. 사무국 역할을 하는 ‘기획운영단’엔 부위원장과 분과위원장들이 참여한다.

 통일준비위 아이디어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이던 2012년 12월 참여한 9명의 공개 연구에서 등장했다. ‘통일 대비를 위한 대북통일정책 모색’이란 연구서에서 저자들은 “향후 대북 정책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려면 통일위원회(가칭)와 같은 기구를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번에 통일준비위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통일부가 중심부에서 밀려남으로써 주무 부처로서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는 지난달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 구상을 밝힐 때까지도 사전에 이런 기류를 감지하지 못해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청와대 발표 20분 뒤에 이어진 브리핑에서 통일부 당국자는 사무국 위치, 전문위원 규모 등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토 중”이란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향후 통일준비위에서 통일부가 주무부처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벌써부터 “경제부총리가 함께 위원으로 참여하는데 직급상 낮은 통일부 장관이 정부 측 부위원장을 맡을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통일부의 위상 축소와 관련,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은 “통일부는 통일을 향한 장단기 계획을 만들며 창조행정을 해야 하는데 이보다 대북 교류 협력과 인적 왕래에서 ‘허가를 받아라 말라’는 식의 규제 행정을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일부 자문 역할을 했던 한 대북 전문가는 “대통령이 담화에서 ‘통일 대박’을 밝혔는데 주무 장관이라면 청와대의 후속 조치를 예측하고 적극 보좌했어야 한다”며 “그랬다면 왜 통일부 소외라는 얘기가 나왔겠나”라고 지적했다.

채병건·김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