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서워라 ISS 손끝 … 주총 앞둔 기업들 식은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큰일입니다. ISS가 회장님 이사 선임을 반대한답니다.”

 효성 기업설명(IR) 담당자들은 요즘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세계 최대 주총안건 분석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가 오는 21일 열릴 예정인 효성의 주총에서 조석래(79) 효성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기 때문이었다. ISS는 주요 반대 사유로 조 회장이 검찰에 기소된 점을 꼽았다.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기 때문에 주주가치를 높여야 할 사내이사로서 결격사유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12일 기준 효성에 투자한 외국인 비중은 29.34%.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해야 한다’는 ISS의 가이드라인이 전달되자 효성은 외국인 주주들로부터 대거 반대표를 받게 될까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안홍진 효성 전무는 “투자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판결이 확정되지도 않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내용의 설명서를 외국인 주주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14일과 21일 주요 기업의 주주총회가 몰려 있는 ‘수퍼주총’을 앞두고 ‘ISS발(發) 폭풍’이 어느 때보다 거셀 것으로 보인다. ISS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주는 주총안건 분석 전문회사다. 모건 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의 자회사로 1985년 세워진 이 업체는 세계 100여 개 시장에서 벌어지는 연간 4만여 건의 주총 안건을 분석한다. 투자자들이 주총 안건에 대해 찬성표를 던져야 할지 말지를 대신 검토해 알려주는 일을 담당한다.

 이곳에서 내린 안건 찬반 결정은 전 세계 1700여 곳의 기관투자가들에게 제공된다. 국민연금도 애플과 같은 외국 기업의 주총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땐 이곳의 의견을 따른다. ISS가 주총안건을 분석하는 국내 기업은 700곳.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침’으로 삼는 ISS의 보고서도 파급효과가 커지고 있다.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주식의 50.12%가 외국인 소유다. KB금융지주(62.87%), 네이버(59.58%), KT&G(58.61%), 포스코(52.22%) 와 같은 주요 기업도 외국인 주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초 KB금융 경영진은 주총을 앞두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사 선임을 위해 ISS에 비공개 정보를 전달했다. 이사 후보들에 대한 ‘내부 정보’를 전달받은 ISS는 이에 따라 이사회 의장 등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결국 금융당국의 조사를 거쳐 어윤대(69)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징계를 받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번 주총에서 효성 외에도 ISS가 ‘반대’ 의견을 내놓은 곳은 SK다. 지난해 최태원(54) SK 회장의 SK C&C 이사 선임을 반대한 데 이어 이번엔 계열사들의 이사 보수 한도에 반대했다.

 최 회장과 최재원(51) SK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말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 선고받자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등기이사로 근무했던 SK㈜, SK이노베이션 은 최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고 이사 수를 한 명 줄였다. 이사 보수 한도는 각각 120억원, 150억원으로 지난해와 똑같이 상정했다. 그러자 ISS는 “최 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빠졌는데도 이사 보수 한도는 왜 줄지 않았느냐”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SK는 당황했다. SK 관계자는 “이사 보수 한도는 한도일 뿐, 실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에게 지급되는 지급액은 다른데도, 한도액을 꼬투리 잡는 것은 지나치다”고 토로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 연구소 이지수 변호사는 “배임 횡령 등 주주가치 훼손 이력이 있는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만 한국의 특수한 기업 문화가 고려되지 않고, 적은 숫자의 인원으로 주총 안건을 분석한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