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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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우리나라는 주먹구구나 즉흥적 시행착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복잡다잡한 문제들 가운데서도 오늘날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현상은 하루 빨리, 그리고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될 고질병이 돼있다. 부조리를 없애야겠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국정을 쇄신하고 사회기풍을 진가할 때마다 선결문제로 나오는 것이 바로 이 부조리문제다.
이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법령도 정비해야겠고, 벌칙도 강화해야겠고, 또 부조리를 집어내는 기관도 설치해야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건전한 정치풍토와 올바른 가치관정립의 선행이다. 오늘날 각종 부조리는 바로 무서운 이기주의와 타락한 국민윤리가 배태한 당연한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의식저조와 가치관의 문제를 매우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에와서 부조리치유방법론을 우리의 의식감소와 가치관속에서 찾자고 역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퍽 다행한 현상이다.

<가치관이 무엇보다 중요>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 걱정에만 몰두하고 자기자신의 반성은 게을리 하면서 부조리를 없애자고 떠들었다. 공무원은 일반시민을 걱정하고, 일반 시민은 공무원을 걱정한다.
여당은 야당을 걱정하고, 야당은 여당을 걱정한다. 늙은 세대는 젊은 세대를 비판하고, 젊은 세대는 늙은 세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잘못은 어느 세대, 어느 직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국민의 실생활과 거리가 두어지거나 안보성이 문제될 수 있는 법이 있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열 사람을 풀어주어도 한사람의 무고한 시민이 갇혀서는 안된다는 법재인의 좌우명이 현행 형소제도하에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기대가능 한 것일까 걱정될 때도 있다.

<위험한 향락주의의 사고>
결국 합리주의적 사고나 행위가 배척당할 때 무법과 부조리가 판을 치게된다.
곳곳에 뿌리 박힌 각종 부조리는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한 사회의 풍토를 결정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것은 그 사회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소유하려 하는가하는 문제다.
즉 강렬한 욕구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회의 의식저조와 정치풍토가 대강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사회에 흐르는 가장 큰 경향이 금전만능주의다.『그 사람 돈을 벌었다』는 말이 곧『그 사람 성공했다』는 말의 동의어로 쓰일 정도로 돈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무섭게 작용하는 사회가 되어있다.
금전만능은 필연적으로 우리사회에 퇴폐적 향락주의를 불러들였다. 먼 장래를 내다보며 원대한 목적을 설계하기보다는 당장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말초적 흥미위주의 사회풍조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결국 금전만능의 풍토가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결합하고 그물질주의 세계관이 향락주의 인생관으로 기울어지는 자연스러운 결론을 유도하고 말았다.

<「나」위주는 모함의 온상>
금전과정악이 우월할 때 사회는 생명과 예술과 인성같은 인간적 가치를 상실하게되고 건전한 사회발전을 위한 협동과 단결, 즉「우리」의 개념이 상실되고「나」의 존재만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나」만을 중히 여길 때 중상과 모략·모함이 또한 따르게 되고 부신의 온상을 마련하게되는 것이다.
금전과 향락따위가 인간적 가치를 압도하는 철학의 빈곤I 특히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부조리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제 부조리제거는 부정한 자를 처벌하는 소박한 「형법상의 위협」에서 한층 더 나아가 정치풍토의 개선·창조라는 차원으로 우리의 의식구조를 하루속히 고쳐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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