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프로10걸」1위 조치훈 6단 자전적 수기|본지독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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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다니」도장이 완전 해체되고 내가「히라스까」까지 따라갔을 때는 선생 집에 신통찮은 초단 한 명과 원생 한 명뿐이었다.
연구바둑을 둘 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내가 가르쳐야 했으며 또 선생의 명성을 듣고 가끔 사람들이 찾아오면 주로 내가 상대를 해야했다.
동경엘 한번 나가려면 2시간 가까이 걸려 대국「스케줄」을 따라가기가 바빴다. 이 무렵 나는 학교 다니는 것은 완전 포기하고 있었다. 제대로 다녔으면 작년 봄에 졸업했을텐데 중도에 그만두어 올 봄에 명예졸업장이란 걸 받았다. 그것이 명예로운 것인지 부끄러워 해야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도장이 해체된 다음 문하생들은 자발적으로 친목회를 만들어 가지고 있지만 친목 이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다. 제자들의 나이도 50대에서 10대까지 연령차가 너무 많고 기력의 차도 너무 많아 제자들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제자들이 잘은 모르지만 몇십 명되고 그 단을 모두 합치면 현재 2백50단이 넘을 만큼 너무 비대하다. 2∼3년 후에는 3백 단이 된다는데 그때는 정말 대대적인 행사를 가질 것이라고 한다.
문하생들이 너무 비대해지니까 가족적인 분위기 같은 게 없었던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도장 이외의 사람과 대결해야하는 게 아니라 같은 문하생들끼리 싸워야하는 점이 말못할 고민이라 하겠다. 그래서 같이 연구를 할 때도 서로가 「라이벌」의식 같은 것을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입문할 무렵 「오오다께」를 내세워 『타도 임해봉』을 외칠 때만 해도 좀 달랐다. 그후 임해봉 타도의 숙원은 「이시다」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그때부터는 또 「이시다」 「가또」 「다께미야」의 『「기다니」문하 3총사』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제 여기에 「고바야시」와 나까지 끼여들어 정말 문하생끼리 치고 받아야 하게 됐으니 승부의 세계란 비정하기만 하다.
「기다니」선생을 위해서는 요즘도 목속회라는 후원회가 있어서 매주 토요일에는「아마추어」들이 바둑을 배우러 모여든다. 현재 회원은 5백 명이 넘고 장소는 일본기원회관을 빌어 쓰는데 문하생들이 교대로 나가 무료봉사로 지도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이 적지 않아 선생의 요즘 생활을 크게 도와주고 있다.
동경도장에 있을 때는 주로 「가지와라」선생에게서 바둑을 배웠는데 그후 나는 개인적으로 「후지사와」선생을 사사하고있다. 요즘도 가끔 내가 둔 기보를 가지고 선생 집을 찾아가 열심히 지도를 받는다.
「후지사와」선생은 제1기 명인을 지냈으며 먼저도 얘기했듯이 「가지와라」 「야마베」선생과 같이 「전후의 3총사」라 불리는 강자다. 그의 바둑은 감각이 탁월하고 독창적이며「스케일」이 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바둑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통쾌하게 해준다. 요즘도 그에게 지도를 받으면 다른 사람은 생각도 못하는 착상을 얘기해주기 때문에 속이다 시원해진다.
나는 일본에서 「후지사와」선생이 가장 세고 가장 배울만한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승부로서 제1인자인 임해봉도 명인이 된 다음까지 「후지사와」선생에게 개인적으로 배웠다고 한다. 나는 「후지사와」선생에게 배우는 동안에도 「가지와라」선생의 지도도 받아 두 분의 장점을 골고루 취하고 있다.
그런데 「가지와라」선생과 「후지사와」선생은 묘하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예부터「라이벌」이라 그런지 아직도 자기가 더 세다고 어린애같이 주장하고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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