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이나에 軍 6000명 투입 일촉즉발 전운 감도는 크림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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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호 01면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자치공화국에 대한 러시아군의 병력 증강 배치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외교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1일 이 지역의 한 도로에서 러시아군 장갑차가 이동 중 잠시 정차하고 있다. 공기흡입관에 새겨진 러시아 국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 도로는 러시아 흑해함대 주둔지와 크림자치공화국 수도를 잇는 주요 이동로다. [바흐친사라이 AP=뉴시스]

우크라이나 남쪽 크림자치공화국에 러시아가 1일 6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군사적 조치를 확대하면서 이 지역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양국 간 협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침공’으로 간주하며 즉각 반발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러시아의 이 같은 행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독일과 영국 정부도 잇따라 러시아의 자제를 촉구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공식 회동에서도 러시아 병력 투입의 적실성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그런 가운데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자치공화국 총리는 이날 긴급성명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지원을 공식 요청했고, 러시아도 즉시 “크림자치공화국의 지원 요청이 있으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세계 최대 가스 생산업체인 러시아 가스프롬의 대변인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할인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P통신과 CNN 등은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달 28일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즉시 중단하고 크림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AFP통신도 1일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6000명의 병력을 크림자치공화국으로 이동시켰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은 러시아의 병력 증강 투입에 대한 목격담을 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크림반도 파견관인 세르기이 쿠트니신은 현지방송 ATR과의 인터뷰에서 “13대의 러시아 수송기가 150여 명씩의 병력을 태운 채 크림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 인근 공항에 착륙했다”며 “현재 이 공항은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우니안통신도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군 전투헬기 10여 대가 군사훈련 도중 아조프해 인근 케르치 해협 쪽 우크라이나 국경을 무단 침범했으며,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에 주둔 중인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군인들도 우크라이나 해안부대 초소 봉쇄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상호 협정에 따른 러시아 흑해함대의 군사훈련으로, 우크라이나 주권을 침해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며 군사개입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매우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과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어떠한 군사적 개입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AFP통신은 미 행정부 고위관료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 오바마 대통령 등 주요국 정상들이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불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이날 자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여행을 취소할 것을 당부했다. 영국 정부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자국민에게 철수를 지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선 데에는 러시아가 군사적 추가 조치에 나설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국의 오래된 긴장관계가 되살아나면서 ‘신냉전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오바마 대통령의 공개 경고는 미국이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헤르만 반롬푀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유럽 지도자들도 푸틴 대통령과 잇따라 전화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조치는 피하라”고 촉구했다. 유엔 안보리도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따라 비공식 회동을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라이몬다 무르모카이테 안보리 의장은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주권, 포괄적인 정치적 대화를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공식 성명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사만다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크림반도의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보다 긴급히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든 행위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정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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