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교통사고 환자 멀쩡해 보이면 일본은 보험금 아예 안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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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본은 의료비의 환자 본인부담률(18%)이 낮아 손해보험사의 실손형 보험 판매실적이 저조하다. 대신 입원비와 가족의 간호비용(교통비 등)과 같은 부대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정액형 보험이 잘 팔린다.

 일본의 정액형 보험은 대체로 입원할 경우에만 보장한다. 암으로 수술을 받고 입원하면 수술비(진단금)를 따로 주는 것이 아니라 수술 없이 입원했을 때보다 조금 더 주는 형태다. 이렇다 보니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아 차액을 남길 소지가 적다.

 보험 약관에는 입원에 대해 ‘의사에 의한 치료가 필요하고, 자택에서의 치료나 통원을 해서는 치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병원 또는 진료소에 들어가 항상 의사의 관리하에 치료에 전념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불필요한 입원을 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교통사고 환자들이 입원치료를 받는 주요 질환인 목 근육과 인대 손상, 허리 통증의 경우 의사의 진단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타각 소견이 없을 때(다른 사람이 봐서 멀쩡할 때) 아예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골절 등으로 큰 수술을 하지 않고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결과 이상소견이 없다면 장기간 입원하더라도 보험금을 안 준다.

 일본의 생명보험협회는 정액형 보험 계약내용등록제도를 운용하면서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험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다른 보험사의 가입 여부를 확인해 과다하게 여러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또 상급 병실료(1~5인실) 차액이나 부대비용 등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비 수준을 감안해 하루에 지급하는 보험금 최고 한도는 2만 엔(약 20만원)으로 하면서 직업·소득 등에 따라 가입금액을 다르게 적용한다.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신기철 교수는 “일본은 이미 1970~80년대 요추 환자, 경추 환자들의 장기입원 양태를 경험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상품과 약관 개발을 해 왔다”며 “우리나라도 정액형 보험에 계약내용등록제를 도입하고 과다한 의료 이용을 하지 않게 약관 내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정액형·실손형 의료보험=보험사가 계약 당시 보장하기로 한 질환 등이 발생했을 때 진단금이나 입원료 명목으로 정해진 액수만큼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 실제 발생한 손해액을 지급하는 실손형 상품과 대비되는 개념. 통상 실손형 상품에 정액형 담보 특약이 포함돼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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