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고노 담화 신빙성 문제 … 전문가 검증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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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에 대해 “학술적인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일본유신회 중의원이 2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취 조사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3국의 학자를 포함해 재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이같이 답했다. 그동안 보수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된 청취 조사에 피해자의 성명과 생년월일 등이 부정확하고 증언 내용이 모호하다며 고노 담화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 보도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과 관련해 검증팀이 고노 담화 폐기를 위한 사전 작업에 나설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마다 의원은 이날 1993년 고노 담화 발표 당시 관방부장관이던 88세 고령의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를 불러냈다. 어떻게든 한국에 불리한 증언을 이끌어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폄훼하기 위해서다. 시종 유도 질문을 이어가던 야마다는 이시하라 전 부장관이 “(강제동원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제3국의 연구자들까지 포함하는 팀을 만들어 담화를 재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스가 장관은 “(위안부에 대한) 증언 청취는 비공개를 전제로 이뤄진 것이다. 이를 기밀로 유지하면서 전문가들로 팀을 만들어 검증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스가 장관의 답변 과정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에게 무언가 지시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이날 발언은 아베 총리의 측근과 이른바 ‘아베표 낙하산’ 인사들이 과거사 등에 대해 망언을 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야스쿠니(靖國) 참배로 인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다가 오히려 무리수가 잇따르는 모양새다.

 아베의 경제브레인 혼다 에쓰로 내각관방참여(자문역)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19일자 인터뷰에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를 칭송했다. 그는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그들의 희생 위에 있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그는 특공대원들의 ‘자기 희생’을 언급하다 눈물까지 머금었다고 한다. WSJ은 혼다가 “아베노믹스의 배후에 국가주의적 목표가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며 “일본이 강한 경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임금상승·생활향상 이외에 더 강한 군대를 갖고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망언대장’ 아소 다로 부총리는 외무성까지 부인하는 엉뚱한 얘기를 했다. 그는 19일 국회에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주변국 반응과 관련해 “외무성에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중국의 주일대사가 참배 당일 외무성을 항의 방문했고 주한·주중 일본대사가 해당국 외교부에 초치됐음에도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도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의 말을 부인했다.

 공영방송 NHK의 품격을 연일 떨어뜨리고 있는 회장과 경영위원의 황당 발언도 이어졌다. 모미이 가쓰토 회장은 19일 국회에서 ‘NHK가 캐럴라인 케네디 대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잇따른 망언으로) 거부당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취재와 제작 과정에 관한 내용은 기업비밀이라 답변하지 못한다”고 말해 반발을 샀다.

 도쿄도지사 선거 지원유세에서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고 했던 햐쿠타 나오키 경영위원은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뷰에서 “위안부 동원을 국가(일본)가 강제했거나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난징 대학살이 있었다고 말했어도 비판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총리보좌관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한 미국에 대해 “실망한 것은 오히려 일본”이라고 주장한 동영상이 파문을 낳은 것과 관련해 아사히는 “미 정부에 대한 불만은 아베 총리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결정 등으로 미국을 배려한 아베로서는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개 비난을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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