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회의 … 의원 50여 명 한국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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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일 오후 2시 열릴 국회 본회의엔 국회의원 50명 이상이 못 나온다. 의원들이 이날 오전 무더기로 해외출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 중 새누리당 의원이 40명에 이른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선행학습금지법안 등 민생법안 처리에 당장 비상이 걸렸다.

 국회 한·중의원외교협의회(위원장 정몽준)와 한·중의회정기교류체제(단장 이병석) 소속 여야 의원 40명은 이날 중국으로 떠난다. 역대 최대 규모다. 19일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의 여야 7명이 러시아 소치로 출발했다. 대한체육회 측에 확인한 소치 일정은 ‘관람’이 대부분이었다.

 강창희 국회의장도 국내에 없다. 그는 지난 8일부터 13박15일 일정으로 여당 5명, 야당 3명 등 8명과 함께 남극과 뉴질랜드·호주 출장을 갔다.

 의원들의 대규모 해외출장 문제로 신경이 예민해진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정몽준 의원 간에 언쟁이 벌어졌다. 19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최 원내대표는 정 의원에게 “방중 규모를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 “본회의 당일 수십 명이 한꺼번에 외국에 나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면서다.

 ▶정몽준=“그럼, 본회의 일정을 조정해 달라.”

 ▶최경환=“(목소리 높이며) 그것 때문에 어떻게 합의 일정을 바꾸나.”

 ▶정몽준=“툭하면 고함 지른다.”

 ▶최경환=“언제 고함을 질렀나.”

 두 사람의 설전은 서울시장 선거라는 미묘한 문제로 번졌다.

 ▶정몽준=“(현대중공업 주식의) 백지신탁 문제로 서울시장 출마가 어렵다는 말을 하고 다니느냐.”

 ▶최경환=“기자들이 당연히 그 문제를 묻지 않겠나.”

 ▶정몽준=“왜 내게 안 물어봤나.”

 ▶최경환=“그게 물어볼 일인가.”

 정 의원 측은 “방중은 12월에 잡힌 일정으로 당시엔 2월 국회 일정이 없었다”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면담하는 중요한 의원 외교이지 결코 외유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본회의 일정이 잡혀 최 원내대표와 윤상현 수석부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허가를 받았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 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며 “ 규모를 좀 줄여 달라는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최 원내대표는 설전 직후 의원들에게 “본회의에서 주요 안건을 표결 처리하니 해외출장 및 개인 일정을 자제해 전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도 돌렸다.

 문자메시지대로 20일 본회의엔 중요한 법안이 다수 오른다.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선행학습금지법안 외에 경기활성화법안 이나 조희대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등이 올라 표결을 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민생법안의 2월 통과를 다짐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관련 법이 제때 국회에서 통과돼야지 300일을 묵히고 퉁퉁 불어 터진 국수같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원 50명 이상이 한꺼번에 외국으로 떠나면 의결정족수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가까스로 정족수를 채워도 여당 의원이 대거 빠지는 만큼 주요 법안이 부결될 수도 있다.

 본회의 사회권 또한 강 의장의 부재로 인해 민주당 박병석 부의장에게 맡겨야 한다. 박 부의장 측은 “민생법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본회의 사회권을 야당에 맡기는 일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의원 외교나 업무상 출장은 필요하지만 입법권보다 중요한 건 아니다”며 “그런데 정작 가장 소중한 입법권을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고 지적했다.

강태화·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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