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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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4년의 학술연구발표는 한국학과 중공문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밖에도 청년문화논쟁·인권논의·교육·인구문제 등에 대한 논의와 연구발표도 활발히 전개됐다. 「심포지엄」·「세미나」·연구발표대회·강좌 등의 형식으로 1백50여회의 학술활동이 이 같은 문제들을 놓고 때로는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전개됐다. 그러나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들 학술발표회의 대부분이 『별다른 수확이 없는 연구실적선전의 형식적인 모임』이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74년 학술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논쟁은 한국사 부문의 「단군신화 논쟁」과 「청년문화론」-. 개편된 중·고교 국사 교과서의 기록에서부터 비롯된 단군신화 논쟁은 지난 7월 이병도 박사·류승국 교수(성균관대)·김정배 교수(고려대) 등 노장학자들이 계속 「역사설」을 주장하고 한국사학회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부터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교과서를 집필한 김철준 교수(서울대) 등의 중견 학자들은 계속 「신화설」을 굽히지 않고 맞서면서 『오늘의 문명시대에 신화에 나타난 인식을 그대로 교육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류승국 교수가 단군을 역사적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 문헌 등을 제시하고 이어 김정배 교수가 그를 뒷받침하고 나서면서 그 절정에 달했었다.
또 국내 학자들의 한국학연구가 올해부터 중·근세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특기할만하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의 『고려의 사회와 문화』를 주제로 한 학술발표대회(10월26일)와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의 『조선 전기의 사회와 문화』를 주제로 한 공개학술강좌 (12월13∼14일)가 그 예-.
이들 학술발표회에서는 『고려는 귀족사회가 아니라 도당을 중심으로 한 관료사회였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고 조선사회의 신분제도와 언론제도 등에 대한 중견 학자들의 알찬 연구발표도 있었다. 이밖에도 한국학에서 학계의 관심을 끈 것으로는 초기 백제사의 연구를 위한 모임과 연·고대 교수들이 중심이 된 「실학논의」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한반도 정세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중공문제는 좋든 싫든 우리의 큰 관심사로 등장했다. 중공문제 연구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몇 차례에 걸친 「세미나」, 건국대 통일문제연구소의 『중공문제 「심포지엄」』(9월27일),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의 『중공교육제도』학술강연(12월11일) 등과 중국문제연구원장 신상초씨가 쓴 『공산중국의 현황』 등이 의욕을 보였지만 대부분 자료의 불충분과 정보빈곤으로 신문보도내용의 범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신문연구소의 국제「세미나」에서 「스칼라피노」교수(미·「캘리포니아 대) 와 위등반길 교수(일·동경대) 등이 『중공은 지역적 강대국의 노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나 국내 학자들이 중공을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공산국』으로 규정, 연구를 계속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한 것 등으로 미루어 중공문제연구는 앞으로도 더욱 활발해질 것 같다.
지난 봄부터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서 일기 시작한 청년문화론은 일부에서는 청바지·통「기타」 등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의 현상과 그 존재를 긍정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울대 한완상 교수(사회학)나 고려대 임희섭 교수(사회학) 등 부정론적 입장인 학자들은『한국의 젊은이들에게서는 기존문화나 가치에 정면도전하는 체계적인 행위양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한국에는 아직 반문화로서의 서구적인 청년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어령 교수(이화여대·문학) 등의 긍정론적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은 『통「기타」의 젊은 세대들은 기성문화의 양극을 왕복하는 반위선, 반권위적인 아름다운 인간』으로 추켜 올렸고 김상협 고려대 총장도 동 대학 추계 학술강연회에서 『서구의 청년문화는 이미 우리 젊은 세대에게도 형성돼있다』고 말했다.
인권문제에 관한 강좌나 강연회가 예년과는 달리 눈에 띄게 많았던 것은 우리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앰네스티」·흥사단·각종 종교단체 등이 주로 주최한 인권논의를 위한 모임에서는 『유신헌법은 기본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소리가 높았고 정치범·민청학련사건 등이 인권문제와 결부돼 특히 지적됐다.
이러한 모임들은 비록 학술적 가치는 없었다 할지라도 현실문제를 다뤄 교양을 높이고 사회의식을 고발한 점에서는 적지 않은 의의가 있었다고 하겠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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