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자이너 산실 '이서현의 패션스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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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사장

18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런던 패션위크엔 어느 때보다 많은 한국인 또는 한국계 디자이너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이번 행사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막 무대를 장식한 이정선 디자이너,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체 컬렉션을 진행한 최유돈 디자이너, 그리고 세일즈 쇼룸을 운영한 허환 디자이너는 모두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디자이너는 2011년, 허 디자이너는 2014년 SFDF를 수상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수상한 최 디자이너는 ‘히스테리아’라는 주제로 1960년대 영국 모던 록밴드가 즐겨 입던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컬렉션을 선보였다.

 SFDF는 이서현(41)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작품이다.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한 2005년 만들었다. 회사의 이익과는 별도로 한국의 신진 패션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세계 무대에 나갈 수 있게 키우자는 취지였다. 미국 뉴욕의 패션스쿨인 파슨스를 졸업한 패션 전문가인 이 사장은 “파슨스만 봐도 전체 학생의 약 40%가 한국인일 정도로 국내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나올 수 있는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 글로벌 디자이너 브랜드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줄곧 말해왔다. 그는 “스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이를 위해서는 업계 선두기업이 발벗고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SFDF에는 매년 100개 이상의 팀이 응모한다. 이들 중 2~3명의 신진 디자이너가 각각 10만 달러(약 1억650여만원)의 상금과 함께 해외 패션쇼에 나갈 수 있는 지원을 받는다. 창작 활동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1억원이 넘는 거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상금을 받고 난 뒤에도 글로벌 무대 진출을 지속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숨은 인재들이 몰려든다. 지금까지 15개 팀에 총 230만 달러를 지원했다.

 SFDF는 한때 없어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환율이 급등하고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지자 임원들이 SFDF를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몇 년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라며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런던 패션위크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 사장은 개인적으로도 SFDF에서 선발된 신진 디자이너들을 각별히 챙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밀라노 패션쇼 때 이들이 패션계 거물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놔 주는 것은 물론, 이들이 만든 옷과 가방을 이용하기도 한다. SFDF 수상자인 가수 겸 배우 출신 디자이너 임상아씨의 ‘상아백’을 공식 석상에 들고 나온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임씨 이외에도 미셸 오바마의 만찬 드레스를 만든 두리 정, 남성복 ‘준지’로 파리에서 호평받는 정욱준 삼성에버랜드 상무, 부부 디자이너 스티브 J&요니 P 등이 모두 SFDF가 배출한 스타들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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