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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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부통령은 속칭 「스페어·타이어」라고도 한다. 대통령에게 혹시 여차한 일이 있을 때나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지위가 아니다.
그것은 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가 결정되는 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통령 후보는 전국 구석구석에서 표를 모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면 안된다.
그러나 부통령은 출신지나 사고방식 혹은 지지층·종교 등에서 대통령 후보와는 대조적인 인물이 선정된다. 말하자면 선거전략상 보완적인 역할을 할만한 사람이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다. 1967년 헌법수정 제25조가 성립되기 전까지는 부통령 궐위시 그 역임을 임명하지 않은 채 부재상태로 있어야 했다.
부통령의 임무 가운데는 상원의장직이 포함되어 있다. 든든한 대통령 아래서는 부통령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상원의장의 임무만으로 시종하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유고시엔 일약 하루아침에 부통령은 그의 후임자로 등극한다. 「트루먼」 「존슨」 「포드」가 그랬다.
이번 미국의 제41대 부통령으로 취임하는 「넬슨·록펠러」의 경우는 좀 특수한 사정이 있다. 「닉슨」 「애그뉴」정부통령이 모두 불명예사임을 한 뒤 그 후임자들은 모두 선거를 거치지 않고 정부대통령이 된 것이다. 또 「포드」는 「워터게이트」사건의 오욕을 씻고 2년 후의 차기 대통령선거에 나서야 할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다. 「록펠러」는 정치력이나 행정능력, 또 지명도에 있어서 단연 거물급이다. 그는 미국의 명문이며 대재벌이자 석유왕인 「존·D·록펠러」2세의 차남이다. 당년 66세. 공화당 안에선 동부세력의 대표격으로, 중도파라기 보다는 우파에 기운 「리버럴리스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대통령을 꿈꾸어왔다는 말을 스스로 할만큼 야심가이다. 사실 그는 64년, 68년의 당대회에서 지명을 받기 위한 「캠페인」을 벌인 일도 있었다. 결국 이혼경력의「징크스」 등이 「마이너스」작용을 해서 도중하차를 하고 말았지만 아직도 어린 시절의 그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바로 작년 12월 미국사상 최장인 15년간이나 계속해온 「뉴요크」주지사를 해임한 것은 76년을 겨냥한 것이었다.
「닉슨」 집권당시 「록펠러」는 한때 국무장관설이 있었다. 그러나 「닉슨」은 「록펠러」의 집념이 마음에 걸려 끝내 그를 기용하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다. 이번 부통령 취임에도 곡절이 없지 않았다. 무려 4개월을 두고 미국상하 양원은 인준을 미루어왔었다.
「록펠러」의 정치적인 기부행위와 재산 등이 문제가 되었었다. 새삼 「청결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적 결벽증이 의심을 자아낸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공화당의 당풍에 그가 활기를 넣어준 것은 사실이다. 「포드」가 「록펠러」를 부통령에 지명한 것도 민주당에 대한 포석으로는 그럴듯하다. 오늘, 「록펠러」부통령의 취임은 민주주의의 긍정적인 면들을 새삼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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